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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랑 Oct 05. 2023

비굴한 생일파티 초대장

신분상승의 헛된 꿈을 꾼 11살

재미없는 모범생은 잘 나가는 아이가 되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 바람은 도망으로 끝납니다.


저는 5학년이 되었습니다. 저희 학교의 학급은 10개나 되었지만, 5학년쯤 되면 서로 어떤 아이들인지 대강은 알게 됩니다. 그때의 저는 공부만 하는 재미없는 아이였습니다. 그저 성적이 좋아서 아이들이 무시하지 않는 정도였어요.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의 성적은 부질없는 데 말이지요.


그 당시 제 관심사는 소설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서 계속 소설책을 읽었죠. 프랜시스 호지넷 버넷의 ‘소공녀’와 쥘 베른의 ‘15 소년 표류기’를 제일 좋아했어요. 소설을 읽으면 저는 선하고 멋진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상냥함을 잃지 않고, 부유한 부모님이 나타나고, 무인도에서 살아남고, 아이들의 리더가 되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영웅이 되었죠.


지금 생각하니 11살의 저는 소설로 도망쳤던 것 같습니다. 현실은 만족스럽지 않았으니까요.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현실은 제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못생기고 친구도 적었습니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셔도 힘 없이 따랐습니다. 속으로는 불만투성이면서도요. 겉과 속이 다른 제 모습이 싫었습니다.


저는 예쁘고 인기가 많은, 솔직하고 당당한 아이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노는 애들’처럼요.



그때는 ‘일진’이라는 단어가 제가 사는 곳까지 도착하기 전이었습니다. 대신에 ‘노는 애들’이 존재했습니다. 그 애들은 어른들이 금지한 귀걸이를 했습니다. 서로 돌아가며 연애도 했어요. 공부가 아닌 춤과 노래에 관심을 보였지요. 자유분방하고 매력적인 그 애들은 동경과 질투의 대상이었습니다.


노는 애들은 반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애들은 쉬는 시간마다 모여 앉아 큰 소리로 웃었지요. 그 아이들이 모여 앉은 책상의 주인은 쉬는 시간 동안 교실 뒤에서 서성여야 했습니다. 때로는 수업시간에도 노는 애들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했지요. 저도 몇 번인가 자리를 바꿔주었습니다. 물론 그 애들은 부탁을 했을 뿐, 제가 탐탁지 않으면 거절해도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는 애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수련회 같이 반 대항 장기자랑 대회가 있을 때는 항상 그 애들이 참여했습니다. 저는 우리 반의 우승을 위해 노는 애들의 춤과 노래를 진심으로 응원했지요. 노는 애들은 벌써 자신을 꾸밀 줄 알았습니다. 머리에 작고 예쁜 핀을 잔뜩 달고 입술에 틴트를 바른 그 애들은 정말 예뻤어요. 그 애들은 제게 핑클이고, 베이비복스였습니다. 시시한 저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어요.


제가 특히나 부러워하는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또래보다 훨씬 키가 크고 허리까지 머리를 기른 아이였습니다. 그 애는 저와 다르게 안경도 쓰지 않았어요. 살짝 있는 주근깨가 귀여웠습니다. 그 애는 달리기를 무척 잘했습니다. 이어달리기 계주에는 항상 그 아이가 빠지지 않았어요. 제가 없는 것을 모두 가진 그 애는 반짝였습니다. 저는 막연히 그 애와 친해지고 싶었어요. 제가 못난 대신 잘 나가는 애랑 친해지고 싶은 심리였죠.




남방을 껴입는 가을이었습니다. 제게 꿈만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동경하던 그 애가 자신의 생일에 저를 초대한 것입니다. 잘 나가는 아이가 아니면 그 애의 생일에 갈 수 없었는데도요!


그 애가 친하지도 않은 저를 초대한 이유는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애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혹은 그 애 말고도 생일파티에 초대된 잘 나가는 애들과 친해질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저는 노는 애들의 무리와 함께할 수도 있었어요. 그 애의 초대는 신분상승의 기회였습니다.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어머니께 받은 용돈을 들고 학교 앞 팬시점으로 갔습니다. 하늘색의 반투명한 케이스가 마음에 드는 색연필 세트를 샀어요. 거기에 500원을 더 내고 선물용 포장을 했습니다. 팬시점 주인아주머니는 색연필 세트를 포장지로 감쌌습니다. 그리고 선물의 왼쪽 모서리에 반짝이는 리본으로 만들어진 포장용 별꽃을 붙여주셨습니다. 저는 근사해진 선물을 꼭 안고 그 애의 생일파티로 갔습니다.

2층 주택인 그 애의 집에서 생일파티가 열렸습니다. 그 애의 어머니는 맛있는 피자와 치킨을 시켜주셨지요. 초대받은 아이들은 큰 상을 여러 개 붙인 생일 상에 둘러앉았습니다.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선물 전달을 했지요. 저도 자랑스러운 제 선물을 그 애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음식을 어느 정도 먹은 후 그 애는 집 앞 골목에서 놀기를 제안했습니다. 차들이 듬성듬성 불법주차 되어있는 좁은 골목이었지만 놀 줄 아는 아이들에게는 충분한 무대였습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었습니다. 그러다간 삼삼오오 모여서 머리를 매만져 주거나 이야기하며 웃었지요.


저는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했습니다. 제 상상과는 다른 생일파티에 어떡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저 현관 문턱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었죠. 사실 저는 가을 하늘을 누비는 잠자리를 잡으며 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무렵에는 그게 제일 재미있는 놀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곳에 있는 아이들 누구도 잠자리에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아이들만으로도 완벽히 재밌어 보였습니다.


엉덩이가 차가워질 때쯤 생일 맞은 아이의 단짝이 제 옆에 앉았습니다. 댄스동아리를 하는 단발머리 여자애였어요. 반에서 제일 잘 나가는 아이였죠. 그 애가 키득거리며 제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여기 왔는지 알아?”


대답을 원하고 물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가만히 기다리니 그 애가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네가 착하길래 초대하자고 했어. 여긴 착한 애가 없잖아.”


그 애는 저를 툭툭치고는 골목 한가운데로 가서 다른 아이들과 까르르 웃었습니다. 그 당시 ‘착하다’는 말은 아이들 사이에서 결코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장점이나 특색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죠. 참담했습니다. 놀림감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의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돌바닥이 차가운 자리에서 조용히 도망쳤습니다. 잘 나가는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신분상승의 꿈은 헛되게 사라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색연필처럼 어린애 같은 선물을 한 애는 저뿐이었습니다. 다들 립글로스나 예쁜 머리핀 같이 센스 있는 선물을 주었다고 하네요. 그 사실이 더욱 저를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제가 그 골목에서 도망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조용히 사라지는 대신 저를 초대한 아이에게 직접 말했겠죠.


“생일파티에 초대했길래 네가 나랑 친해지고 싶은 줄 알았어. 그런데 너는 나에게는 말도 걸지 않는구나. 이만 가보도록 할게.”


그날로 잘 노는 애들에 대한 동경을 접었을 것 같습니다. 대신에 제 나름의 반짝임을 찾기 시작할 거예요.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대신에 제가 가진 것들을 탐구하는 거죠. 저를 ‘착하다’고 무시하던 아이들이 더 이상 저를 휘두를 수 없도록요.


그리고 적은 수지만 제 친구가 되어준 아이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 애들과 더 재밌게 지내도록 노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제 유년시절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때의 기억을 날조합니다.


저는 초등학생 때 또래보다 성숙하고 끼가 넘치는 ‘노는 아이들’을 동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냥 남을 동경하기보다는 제 관심사와 흥미에 더욱 집중하고 주변의 친구들과 귀여운 우정을 나누었지요. 때로는 노는 애들이 부당한 요구를 하였지만 굳이 그 애들과 친하게 지낼 이유는 없었기에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만족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가 없는 아이였다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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