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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을 모으는 연습

[제32회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Day 5

by 이건

도핑검사를 하다 보면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다. 정식으로 등록된 선수는 언제라도 도핑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간혹 어떤 선수는 자기가 마치 아량을 베풀어 검사를 받아주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또 다른 선수는 지난번에 검사를 받았는데 왜 또 나냐며 뻔한 레퍼토리로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내일이 시합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항의라도 하면 금세 피로감이 몰려오고 인생이 서글퍼진다.


물론 대회를 앞두고 극심한 체중감량을 하고 있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어 시료제공이 쉽지 않은 선수의 입장에서 보면 갑자기 들이닥친 도핑검사관이 마냥 반가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반대의 선수들도 많다. 모 선수는 새벽 5시에 집으로 찾아가도 짜증을 내기는커녕 오히려 오시느라 고생하셨다며 직접 커피까지 타 주고, 또 다른 선수는 "검사 마치고 다시 먼 길을 가셔야 하니 제가 빨리 하겠다."라고 오히려 검사관을 배려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도핑검사의 원칙을 이해하고 인성과 실력까지 겸비한 선수를 만날 때면 "그래. 내가 이 맛에 검사관을 하는 거지." 하며 잠시 흐뭇함에 빠질 때도 있다.


이곳 프놈펜에서는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한다. 상대방이 누구인지에 따라 손의 높이가 조금 달라진다고 하는데 이런 인사가 나에겐 큰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얼굴에 대고 고개를 숙이는 행위는 어쩌면 인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런 인사는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겠다는 다짐이 되고 매번 불쑥 올라오는 교만함을 다시 한번 지그시 누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


대회나 협회 관계자, 심지어는 프로구단의 트레이너까지 자기가 꽤나 권한이 있는 사람인 양 행세하며 폼을 잡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 오히려 진정한 권위는 나를 낮추어 상대방을 존중함으로써 빛이 난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나는 매우 권위적이었다. 누가 들이대지 못하도록 크게 마음의 성을 쌓고 살았었다. 이번에 한국에 돌아가면 실천해야 할 소중한 삶의 교훈을 가르쳐준 캄보디아에 두 손 모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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