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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검사관, 이사부

[제32회 캄보디아 동남아시아 경기대회] Day 9

by 이건

도핑검사는 한 선수의 커리어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에 도핑검사관이라면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 Doping Agency)'에서 마련한 기준들의 제정 이유를 잘 이해하고 해석해서 준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러 '국제검사기구(International Testing Agency, 이하 ITA)'를 비롯해 한국도핑방지위원회에서 만든 도핑검사관 매뉴얼에 따라 도핑관리 업무의 완전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업무를 해야 한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느낀 점은 도핑검사의 절차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매뉴얼 속 문구에만 매몰돼 선수나 관계자를 전혀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도핑관리실 수용인원의 한계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몇 배를 초과하는 검사 건수를 배정하는 것이라든지, 사전에 철저하게 검사 준비를 하지 않은 허술함이 초래한 부담을 고스란히 선수에게 전가시키는 일 등을 말한다.


현장 상황에 맞게 선수를 배려해 최대한 검사절차를 조정해야 하지 않느냐며 일부 국제 도핑검사관들의 의견이 제시되었지만 도핑관리본부 총괄 담당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참고로 그는 캄보디아 사람은 아니다.


소변시료 채취를 위한 '프로세싱룸(Processing Room)'을 추가로 확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소변이 급하다는 선수들을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왜 대한민국의 도핑검사 역량이 세계적인 수준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ITA에서도 도핑검사를 함에 있어서 선수는 존중하되 시료는 엄격하게 대하라고 권고하고 있지만 고작 3일 교육받은 현지 도핑검사관들에게 시료 채취 업무를 주도하게 함으로써 시료는 엉성하게 다루고 선수는 최대한 엄격하게 대하는 모순된 상황을 연출해 버리고 말았다.


모든 검사의 중심에는 선수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있다. 실제로 스포츠 현장에서는 금지약물 복용과 같은 잘못된 방법으로 성적을 올리려는 선수보다 땀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선수가 대다수다.


선수가 아니면 결코 선수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핑관리 업무에 꼭 필요한 도핑검사관이 되려면 선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핑검사관에게는 여러 가지 특별한 혜택이 주어진다. 대개의 경우 경기장의 모든 장소를 제한 없이 다닐 수 있고 선수의 락커룸이나 집을 방문할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선수를 도핑검사 업무를 하면서 두세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ITA에서도 도핑검사관은 자신의 권한을 절대로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특별한 권한이 주어진 이유는 가장 최선의 검사를 제공하라는 의미가 아닐까?


응급실에 누워 있는 환자에게 입원 매뉴얼을 읊조리거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보호자를 찾는 드라마를 보면서 모두가 한숨을 쉬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때때로 자신을 이해해 주고 친절하게 검사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선수의 말을 들을 때가 있다. 나는 공감과 배려, 원칙과 기준 사이에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그러면서도 선수를 살리는 그런 검사관이 되고 싶다. 당신은 어떤 검사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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