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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ㄹim Jul 24. 2018

초 여름 엠티 。








십여 년 전 초 여름


어느 토요일 오후.



 

그때는 청량리에서 전철이 아닌 기차를 타고 가평으로 엠티를 가던 시절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처음 가는 MT였는데 아르바이트와 겹쳐 부득이 후발대로 합류하게 되었더랬다.
 

어둑어둑 해가 지는 청량리역 광장의 시계탑 밑에서 오도카니 선 채로


나머지 후발대 몇몇을 기다리고 있었다.
 
삼십 분 이십 분 십분.. 기차 시간은 속절없이 다가오고 초조함은 극에 달해 입이 바짝바짝 타던 순간.


또로롱 울리던 핸드폰.

 


아아.



한 녀석은 갑자기 아파 못 온다 하고 또 한 녀석은 낮잠을 자다 이제 깨 못 오겠단다.
 
시꺼먼 밤이 내려앉은 낯선 가평역에 내려 덜덜 떨며 홀로 숙소를 찾아갈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그냥 나도 가지 말까 그래 아무래도 힘들겠어.'
 
울상이 되어 기차표를 환불하려고 발을 내딛던 그때,
 
 
어이 신입생 거기서 뭐해?
 
 
내 머리칼을 잔뜩 흩으러 트리며 정수리를 꾹 누르던 커다란 손.
 
깜짝 놀라 잔뜩 움츠린 어깨 사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과방에서, 뒤풀이에서 흘끗 흘끗 보며 혼자 익혀둔 얼굴이었다.
  
선발대가 추가로 주문한 것이 분명한 삼겹살과 상추가 든 마트 봉지를 들고

특유의 사람 좋은 표정으로 껄껄 웃고 있던 사람.
  


눈물 나게 반갑고 말도 못 하게 안심이 되어 눈물이 찔끔 나왔는데
 
그걸 보고 바보냐? 하며 연신 웃던,

그날 이후 어미새처럼 내가 내내 잘 따랐던 사람.
 


계절마다 산으로 바다로 엠티를 떠나고 과방에 모여 기타를 튕기며


그렇게 우리들은 영원히 젊음을 노래하며 살 줄 알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등 떠밀려 허겁지겁 졸업을 하고 허덕허덕 취업을 하며


아등바등 사람 노릇을 하려고 애쓰다 보니
 
 
덩치가 커다란 선배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기차도 혼자 못 타서 안절부절못하던 여자애는


 해마다 여름 즘 그와 나누는 안부 전화에 피식 웃으며


가만가만 고개만 끄덕이는.
 
 서른몇 살 어른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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