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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ㄹim Oct 14. 2020

일인자 오마니 。







잠에 취한 상태로 아침밥 먹고 원복 갈아입고


치약 얹은 칫솔 입에 앙 물고 비몽사몽 엄마 앞으로 가 앉는다.



칫솔 쥔 손을 위아래로 움직임과 동시에 엄마의 손도 움직이기 시작.


10초나 지났을까. 입안에 거품이 채 일기도 전에 이미 내 눈꼬리는 천장을 향해 올라가는 중.


어찌나 굳세게 머리카락을 모아


하나로 끌어올리는지 눈이 쉬이 깜빡여지지 않는 건 예사였다.



그렇게 하나의 흐름으로 만난 반주먹 움큼의 머리칼은 땋은 머리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디스코 머리로 거듭나곤 하였는데.


두 가닥으로 시작해서 세 가닥 네 가닥.. 점차 가닥을 늘려 섬세하게 얽혀 땋는 디스코 머리는


당시 딸 가진 엄마들의 손재주를 판단하는 하나의 척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용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던 엄마는 효자동 일대 자타공인 디스코 머리의 일인자였다.



엄마를 따라 시장을 갈 때면 내 주위로 모인 아주머니들이,



"하이고 애기 머리를 참말로 옴팡지게도 땋았네, 니 머리 엄마가 해주던?"



라고 묻곤 하였고


그럴 때면 본의 아니게 치켜 올라간 눈꼬리를 최대한 내리깔고    



" 네에 "      



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아유, 애기 엄마 솜씨가 대단하네~"



타인이 보면 표정의 변화를 전혀 못 느꼈겠지만 딸인 나는 알 수 있었다.


스포트 라이트를 넘겨받은, 일인자의 티 안 나게 흐뭇해하는 세미한 표정의 변화를 말이다.



일인자가 좋으면 나도 좋은 거였다.



까짓것 눈이야 좀 안 감기면 어떻겠는가.


찬바람을 올곧이 이마로 다 받아내는 것쯤이야 뭐가 문제가 되겠는가.


일인자가 좋다는데.  엄마가 저렇게 좋아하는데 !




세월은 흘러 디스코 머리 소녀는 쑥쑥 자라 커트머리 어른이 되었고


디스코 머리 일인자는 이따금 경조사 날 친척들 머리를 만져 주며


손을 푸는 것에 만족하는 환갑의 여인네가 되었다.



손끝을 살짝 베었다는 핑계로 참으로 오랜만에 일인자에게 드라이를 부탁했다.


그때보다 머리숱이 줄고 하얀 새치가 소복이 내려앉은 모습이지만


묵직한 드라이어와 브러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솜씨는 여전했다.



사춘기 라는 질풍노조 에 가입하면서 디스코 머리 거부를 선언한 이십여 년 전 그때.


그러니까 지금 내 나이의 젊은 일인자는,


얼마나 서운했을까.


거울에 비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시절. 매일 같이 되풀이되던 그 아침 풍경이


오버랩 되어버렸다.


언젠가 꼭 딸을 낳아서 그 아이의 머리를 맡겨야겠다.

그래서 잊고 있던 일인자의 기분을 다시금 느끼게 해 주어야지..!


얼토당토않는 맹랑한 다짐을 하며


  보다도 공들여 드라이를 해주는 엄마의 모습을


두 눈에 꾸욱 꾸욱 새겨보았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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