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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ㄹim Nov 01. 2021

 누리시길 바랍니다 。











그날.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 매장으로 가 스마트 폰을 정지하고 폴더폰을 개통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다짐만 하고 미루기를 반복하던 일이었던지라 매장을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다.




아유 답답할 거야. 거 불편해서 쓰나.




자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길어봤자 한 달로 점쳐지던 폴더폰 사용은 두 달이 지나고 넉 달이 지나고 어느새 일 년이 되었다.




/




폰을 열어도 할 거리가 없으니 주변 풍경에 시선을 던져두고


무념무상을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늘상 시끄러운 머릿속이 삽시에 고요해지는 신비체험은 실로 짜릿하기까지 하다.


바람에 일렁이는 한강의 표면이 이렇게나 매번 달랐던가.


어느 날은 부서진 석류알같이 영롱한 붉은빛으로 찬란하더니 또 어느 날은


갓 짜낸 오렌지주스의 싱그런 노란빛으로 반짝거린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자면 황홀하여 견딜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하는데.


그런고로 한강을 건너는 삼 분 남짓 짧은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여느 날처럼. 창가에 바투 서 부지런히 흘러가는 푸른 물결을 눈에 담는데 문득,


무슨 말인지 몰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마냥 두었던 말 덩어리 하나가 목구멍을 타고 


쑥 내려가는 묘한 쾌감이 들었다.





그날 폴더폰을 개통하던 날.


머리칼도 눈썹도 온통 하이얀, 마치 산타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대리점 사장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내게 건넨 말.

 




"디지탈 디톡스.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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