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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Sep 08. 2022

강릉 이주, 그 후의 변화

걱정했던 것에 비해서 주택에서의 생활에 금방 적응이 되었다.  지은 지 2년 정도 된 집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손이 갈 것은 없었고, 주변에 이용할 만한 편의 시설이 없는 것도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15분 정도면 강릉 시내에 갈 수 있고, 장은 몰아서 보면 되고, 웬만한 것은 택배로 받아볼 수 있으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기대하지 않아서인지 크게 불편함도 없었다. 



복잡한 번화가에 살고 있을 때 누렸던 문명의 편리함, 생활의 윤택함은 시간이 지나면 당연한 것이 되었었다. 오히려 없는 것들이 더 아쉽기만 했었다. 주변에 병원, 음식점, 가게가 즐비했지만 초등학교가 먼 것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 하다못해 동네에 kfc, 롯데리아만 있고, 맥도널드가 없는 것도 아쉬웠다.^^;; 



그런데 자연 속에서 누리는 충만감은 신기하게도 당연해지지 않는다. 곡식이 쑥쑥 자라는 것을 보고,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감탄한다.  분명히 어제도 걸었던 산책길인데도 매일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놀라워하곤 한다. 봄은 매년 찾아오지만 매번 설레는 것처럼.



사람이나, 강릉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기에 생활이 많이 다르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장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밀도'이다. 대도시에서는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살다 보니 모든 것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 사람, 차, 건물, 도로, 소리, 정보.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나도 모르게 날을 새우고 있었다. 작은 것에도 쉽게 화가 났고,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에는 모든 것들 사이에 여백이 있다. 아는 사람 자체가 거의 없으니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피로가 없고, 차가 막힐 것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주변 아이들이 어떤 학원에 다니고 영어 레벨이 얼마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몸이 긴장하지 않는다. 


산책길 풍경


사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를 사랑한다'라는 것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저 그것은 나르시시즘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 내가 좋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공간을 사랑하고,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자연 속에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는 일하고 있던 치과라는 공간도, 살고 있던 오래되고 작은 빌라도 전혀 긍정하지 못했다. 그때 그것들은 그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할 단 하나의 선택지였다.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시점에서는 그 정도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도 감지덕지해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공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곳 시골에서 새소리를 듣고, 풀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기 때문일까. 나는 한결 여유로워졌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다. 도시에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발견한 내 안의 모습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이곳의 생활에 완전히 적응한 시점에서 이사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했던 때를 떠올려보니, 아무리 확신을 가지고 있어도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는 일은 어렵고 두려운 법인 것 같다. 확신이 없는 상황이라면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남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다.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떤 선택에도 배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라'라고 하는가 보다. 그 경험을 딛고 다음번에 또 다른 길을 낼 수 있을 테니. 이래저래 따져보아도 이사하길 참 잘했다.

이전 09화 정말, 강릉으로 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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