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병상록 #3일차

by 몽글

새벽 5시 50분. 오늘도 체중 측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보다 0.5kg 빠진 듯하다. 이틀 동안 금식한 것에 비하면 감량률이 너무 저조한데.. 아닌가.. 잠깐 눈 붙이니 7시 반. 오늘도 X-ray 촬영 러시가 이어진다. X-ray를 찍고 돌아오니 역시나 잠이 다 깨버려서 씻기로 한다. 수액 꽂은 채로 씻기가 불편하다 보니 대충 씻고 말았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꼬질해서 세수와 양치를 꼼꼼히 하고, 면도도 했다. 수액 때문에 샤워는 어불성설. 머리 감는 것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거지꼴은 면했고, 아침운동 삼아 복도를 걸으러 나섰다. 걷고 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불러 세우더니 금식 팻말을 떼갔다. 그리곤 점심식사부터는 죽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 오예~♥ 드디어 음식이 들어가는구나! 기쁜 마음에 걷는 걸음마저 경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따랐다. 죽을 먹다가 일반식으로 전환되면 나의 몸은 과연 괜찮을지...


걷고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몸은 괜찮냐는 인사말로 통화는 시작됐으나 마무리는 다음 주에 보자는 인사였다. 월요일부터 출근을 바라는 메시지로 들렸다.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 나의 상태를 직접 보지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기는 했다.


통화를 마치고 간호사 선생님께 좀 더 여쭤봤다. 퇴원 후 일반식으로 전환을 해도 되는 것인지 말이다. 대답은 조금 뜻밖이었다. 퇴원을 해도 당분간은 계속 죽으로만 식사를 해야 할 수도 있고, 특히 퇴원 후 첫 외래진료 까지는 죽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이런 경우라면 나는 회사에 나가기가 어려워진다. 나의 회사는 끼니마다 단체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회사 규정에 따라 외부음식반입은 금지된다. 그런 환경에서 끼니마다 죽을 식사로 챙겨 먹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무엇보다도, 매 끼니로 죽만 먹고 업무를 해야 한다니... 그건 정말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드디어 점심시간. 무려 65시간 만에 위장으로 음식물을 밀어 넣는다. 메뉴로는 죽 정도만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푸짐하다. 기본반찬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혹시 몰라 죽과 동치미만 먹고 다른 반찬은 먹지 않았다. 그럼에도 참 좋았다. 뭘 먹는다는 게. 는 즐거움은 나에게는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니 바늘타임. 사실 수액을 꽂았던 오른팔이 점점 아파왔었다. 어제 잠들 때부터 아프다고 느꼈는데, 오늘은 퉁퉁 부은 혈관이 피부를 뚫고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점심식사 전에 수액을 빼두었다. 식사를 마치고 왼팔로 옮겨 주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오른팔에 주사한 바늘은 이틀 전에 응급실에서 놓은 거라 바늘도 커서 더 아픈 거라고 했다. 이번에 왼팔에 놓을 주사는 덜 아프고 덜 불편할 거라고 했다. 그런 줄 알았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니 꼭 그렇지도 않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인데, 영양제 주사를 연속적으로 계속 맞느라고 혈관통이 생긴 것이었다. 혈관통이 한 번 생기니 오른팔 왼팔 할 것 없이 아팠던 것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수액도 새로 꼽고 간단히 운동도 마치니 시간이 꽤 흘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담당의의 회진이 있을 예정이라는 안내 메시지를 받았다. 예정된 회진 시간대가 아니었는데, 게릴라성 회진인가 보다 했다. 앞서 간호사님께 죽과 일반식 얘기를 들은 게 있어서 관련된 질문을 회진 때 꼭 하겠노라 적어뒀기에, 회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병실에서 얌전이 대기했다. 이윽고 담당의가 들어와 상태를 살피고는 내일 퇴원하라는 말만 남기고 나가려 했다. 응? 이런 게 회진인가? 질문도 안 받아? 나는 다급하게 의사를 불러 세우고는 죽을 얼마나 먹어야 하며 일반식으로의 전환은 어느 시점에 가능한지 등을 질문했다. 그리곤 회사에서 죽으로 식사하는 것이 어려움을 호소하며 회사에 공식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진단서가 필요함을 얘기했다. 그런데 내가 얘기를 이어가는 동안, 담당의는 들으려는 의지보다는 자꾸 뒷걸음질을 하는 듯했다. 바쁘신 건 알겠지만... 그래도 환자 말은 들어주셔야죠... ㅜㅜ 아무튼 퇴원=완쾌가 아니라는 사실은 한 번 더 확인했다. 퇴원 후 외래진료 전 까지는 계속 죽으로 식사를 해야 하며. 외래진료에서 담당의 소견에 따라 일반식 전환여부를 결정한다고 했다. 그리니까, 죽에서 일반식으로 전환이 되어야 평상시와 같은 일상생활이 가능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일반식으로 전환했다고 해서 아무 음식이나 섭취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최대한 조심하며 음식을 가려가며 섭취해야만 한다. 이러한 내용을 회사 측에 전달은 해보았다. 하지만 말끔하게 이해가 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퇴원을 한다는데 다 나은 게 아니라는 건가?'라는 의문부호가 붙는 듯했다. 이 부분은 설득(?)에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저녁식사도 죽이 제공됐다. 점심식사보다는 반찬을 조금 더 섭취해 봤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음식의 양과 종류를 늘려가야 하는 이다.





오늘은 어제보다는 덜 걸었다. 아니, 어제 유독 많이 걸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 오늘의 걷기 친구는 <갭워커 수다일기>라는 팟캐스트. 우리 엄마 딸이 만드는 팟캐스트여서 재미 삼아 듣고 있는데, 마침 새 에피소드가 타이밍 좋게 업로드되었기에 걸으며 들을 수 있었다. '기록'에 대한 주제였는데, 이 글 또한 나의 입원 기록을 남기는 측면이 있으므로 팟캐스트 내용과 많은 부분이 겹쳐 보였다. 밥 친구, 운전 친구로도 꽤나 괜찮으니 한 번쯤 들어보시기를 추천해 본다.




오늘도 걷는 코스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기에, 어제처럼 같은 위치에서 시간대별로 사진을 남겨보았다. 무료한 하루 중 내가 스스로 설정한 미션 같은 거랄까. 어제와는 하늘빛이 사뭇 달랐다. 혹시라도 퇴원이 더 늦어진다면 주말 동안에도 같은 구도의 사진을 더 모아볼 생각이었는데, 조금은 아쉽게 되었다.




- 2025년 11월 20일

keyword
이전 07화병상록 #2일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