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만에 뛰어넘은 냇물

사노 요코,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엄혜숙 옮김, 상상스쿨, 2017)

by 강이랑

<그림책 한번 읽어볼까?>

사노 요코의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어느 곳에 작은 집이 있고, 나무가 있고, 할머니와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그림책에서는 할머니의 나이를 정확하게 밝힌다. 98살이라고. 함께 사는 고양이는 5살 난 수컷 고양이다.

이야기는 할머니의 99번째 생일에 초점을 맞춰간다.


할머니가 커다란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콩을 까고 있다. 고양이가 큼직큼직한 물고기를 잡아 할머니가 있는 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온다. 이 장면에서는 왠지 함께 사는 동반자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고 보완해주는 영혼의 단짝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고양이는 날이면 날마다 낚시를 하러 간다. 할머니는 물고기를 잘 잡는 고양이가 신기하기만 하고, 도대체 어느 냇가에서 그렇게 물고기를 잘 잡는지 궁금하지만 단 한 번도 같이 갈 생각을 안 하고,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다. 아무리 고양이가 함께 가자고 권할지라도.


고양이는 할머니가 만든 케이크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99번째 생일을 더 환하게 빛내줄 양초를 사 오라고 고양이에게 부탁한다. 그리고 여기서 일이 발생한다.


99자루의 양초를 사 오다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냇물에 빠진 것이다. 케이크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한시라도 빨리 할머니가 구운 케이크를 먹고 싶었던 것일까. 그럴지도. 집에서 누군가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하고 기다리고 있다면 나 또한 한걸음에 내달리리라. 뛰어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져도 상관없다. 그게 뭐 대수랴, 내가 향하는 집에 행복이 대기하고 있는데.


고양이는 양초 다섯 자루만 무사히 가져온다. 이 다섯 개의 양초가 마법을 일으킨다. 99살을 맞이한 할머니는 다섯 개의 양초를 케이크에 꽂으며 다섯 살이 된다.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된다. 다섯은 고양이 나이기도 하다.


다섯 살이 된 할머니는 고양이를 따라 들판으로 나가 나비가 되고,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고양이가 된다. 그렇게 나비가 되고 새가 된 할머니는 동내 개울을 뛰어넘는다.


할머니는 풀쩍 뛰었습니다.
할머니는 풀쩍 뛰었습니다.
5살 난 할머니는 94년 만에 냇물을 뛰어넘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구씨 같다!

94년 만에 뛰어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할머니는 100살을 목전에 둔 99살에 개울을 뛰어넘는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신의 자서전적인 저서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에서 아프리카 원주민 여성과 대화할 기회를 갖게 되어 집을 방문하는데 대화는 “가족, 아이, 집 그리고 뜰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이었다.(p469)”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녀의 행동거지에서 우러나는 확신과 자부심이 거의 대부분 그녀의 분명한 전체성과의 동일시에 근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전체성은 아이, 집, 작은 가축, 샴바*,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나머지 요소인 그녀의 매력적인 몸매로 이루어져 있었다. 『카를 융 기억 꿈 사상』(p469)

사노 요코의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에서 할머니가 자리한 세상 또한 원주민 여성과 별반 다를 것 없다. 그림책 첫 장면에서 할머니가 자리한 세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곳에 작은 집이 있었습니다.

집 주위에 작은 밭이 있고 채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언제나 낚싯대와 작은 장화가 있었습니다.

반대편 창 아래에는 의자가 하나 있었습니다.(『하지만 하지만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5살이 되어 94년 만에 냇물을 뛰어넘은 것이다. 나비가 되고, 새가 되어 날아오르고, 그렇게 잡고 싶던 물고기를 잡고, 고양이가 된다.

나도 냇물을 뛰어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 내가 자리한 이 작지만 전부인 세상에서 저기 또 하나의 가능성이자 확장인 세상으로 뛰어넘어갈 것인가! 할머니는 99년 만에 뛰어넘었지 않은가. 나도 아직 늦지 않았다.

*샴바:바나나, 단감자, 수수, 옥수수 등을 심은 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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