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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an 01. 2024

여행의 계절

맛있는 단상


나는 모든 계절을 여행하는 사람이다.



나는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 뭘 해야 하는 걸까? 진학을 앞두거나 졸업을 앞둔 전 세계 모든 청년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어온 고민일 테다. 나 또한 졸업을 앞두고 갈팡질팡했다.     

‘나, 뭘 해야 하지?’


조직문화를 매체로 접한 탓에 지레짐작 월급 받는 생활은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회사 생활이 체질일 것 같지도 않았다. 2-30년 동안 한 회사에서 꾸준히 월급을 받아 자식을 부양한 부모님 세대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당시 나는 국제학부를 복수 전공하고 있었는데 국제학 수업을 듣는 학생이라면 으레 그렇듯 UN 입성을 꿈꿨다.


‘나중에 UN에서 일할 거야.’ 

석사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해야 했는데 돈이 없었다.      

‘꾹 참고 딱 2년만 회사에 다니면서 대학원 자금을 마련하자.’ 


결심하고 나서 운 좋게 바로 서류에 붙었고 면접을 봤고 입사를 했다. 공기업의 계약직 사원이 되었다. 당시 내가 믿을만한 거라곤 언어가 전부였다. 외국어 하나만 믿고 지원한 회사였던지라 당시 직업군에 대한 이해도는 제로에 가까웠다. 부서별 업무, 고용보험, 계약서 작성법, 수의계약을 어떻게 하고, 미팅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어차피 2년만 다니다가 대학원에 들어갈 건데 아무렴 어떨까. 


나름 잘하는 걸 맞춰서 들어간 회사에서 재미있게 일을 배우고 열심히 회사 생활을 했다. ‘나 어쩌면 회사 체질일 수도...!’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업무도 팀도 마음에 맞았다. 1년이 흘러 팀이 바뀌고, 사람은 떠나갔다. 새로운 팀에 속하면서 흥미가 급속도로 떨어졌다. 당시 회사는 격동기를 맞이하여 해가 바뀌면 계약직 직원들의 거처가 불투명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자, 선택의 시간이 다가왔다.


당시 내 동생은 항공사 승무원을 준비 중이었다. 

‘언니는 여행 좋아하잖아. 외항사는 어때?’     


운이 좋게 메이저 외항사에서 5년 만에 서울에서 한국인 승무원을 채용을 한다는 공고가 올라왔고 어차피 계약 기간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동생의 조언을 받아들여 항공사에 지원했다. 서류, 1차 인터뷰, 2차 인터뷰, 그룹 활동, 파이널 인터뷰까지 마치고 하루하루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메일이 도착했다.     


“Dear 000
You are requested to fill...” 

어디에도 붙었다는 이야기 하나 없는 형식적인 내용이지만 합격했다는 소리였다.



타지에서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비행하지 않는 시간은 오로지 내게 달려 있는데 어떻게 보면 완전한 자기 계발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때가 바로 글 쓰는 일상에 눈을 뜬 시기이다. 나의 온 감각이 매일 자극을 받고 살아가는 환경에서 얻은 영감 혹은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 그냥 잠들 순 없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신없이 종이에 풀어놓고 나면 한결 편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까만 텍스트로 나를, 내 경험을 담아내는 작업을 사랑하게 되었다. 


글만 쓰는 삶은 배고플 것 같아서 번역을 시작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오한 영역이었다. 번역은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는 존재였다. 고심을 거쳐 고뇌에 다다른 끝에 '나는 답 없는 바본가' 셀프 혐오를 불러올 때쯤 내가 원하던 단어가 나오면 희열이 펑 - 하고 터졌다. 전문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코로나가 터졌다. 승무원을 1년 만에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쩌면 코로나는 좋은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줄곧 벗어나고 싶어 했으니까. 외항사를 그만두고서도 문화예술 기획사에서 회사 생활을 했지만 결국 자유롭게 글 쓰고 번역하는 삶을 택했다.


누군가 비아냥대기도 한다.

‘뭐 하나 끈기 있게 하는 법이 없구나.’     

그래 전부 맛만 보다가 나왔다. 사실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내게 맞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존경하던 부모 세대가 평생을 바쳐 근속 연수를 늘려가던 회사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답을 줄 수 없다면,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나를 행복하게 하는, 영혼을 일깨우는, 삶을 충만하게 일구는 일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꽤 오랫동안 재미를 붙일 수 있으며 돈도 벌 수 있을 만한 장르를 발견해 냈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탄생했다. 뉴욕에 있는 UN본부에 정장바지를 펄럭이며 출근하고 어느 건물 계단에 걸터앉아 샐러드로 점심을 먹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이젠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게 오픈 시간을 꼬박꼬박 지키고 꾸준히 글 쓰고 마감하는 삶이 맞는 체질이 되었다. 



여행으로 시작된 쓰는 삶이라 특히 여행과 관련된 글을 자주 쓰고 좋아한다. 여행을 글로 옮기는 방법을 논할 때 음식을 빼놓을 수가 없다. 내가 음식이라니. 지인들이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내게 기억의 매개체나 다름없다. 


헬싱키에서 시나몬향에 이끌려 시나몬롤을 2개, 아니 3개나 먹고 다시 시나몬롤 맛집을 찾아 걷고 또 걷다가 양볼에 화상을 입었고 따끔거리는 얼굴을 진정시키느라 어찌나 고생을 했던지.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 시나몬 향만 맡으면 나는 그때로 돌아간다. 

‘트램이 한눈에 보이는 5월의 헬싱키 어느 골목길’


음식이 지닌 의미를 깨달은 이후 나는 조금 더 공들여 재료를 선별하고, 식탁을 차리거나 메뉴를 선택하게 되었다.

 

식탁에 올라오기 전 풍기는 냄새, 식탁보의 색깔, 흘러나오는 음악, 그때의 계절, 낮이었던가 밤이었던가. 내 옆엔 누가 있었더라. 내가 한 그릇을 더 먹었던가. 나는 웃고 있었나 울고 있었나     


시간이 흘러 당시를 떠올렸을 때 음식의 맛을 100% 동일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음식이 아닌 기억을 먹게 되니까. 시간이 흐르며 농도가 짙어진 음식은 섭취하던 시간을 더 행복했거나 혹은 쓸쓸했거나 극단적으로 왜곡해 버린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기억의 조각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음식의 맛을 기억의 매개체로 활용한다. 음식을 섭취하듯 추억을 꼭꼭 씹어 흡수한다.


덕분에 나의 여행기에는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더라도 음식이 등장한다. 서랍 속 기억을 이끌어 내는 한편 읽는 이가 공감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행과 음식을 연관 짓는다. 종종 글을 다 써놓고 분량이 많거나 어울리지 않아 지워버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무슨 음식을 먹었더라’로 기억의 문을 연다. 꽤나 성공적인 방법이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오듯 내게 여행은 자연스러운 이치이자 삶의 기록이 되었다.

오늘이 겨울이었다면 다음엔 봄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내게는 여행이 곧 계절이다. 

당신의 계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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