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자기 목소리 듣기)
친구들과의 통화를 녹음해서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동할 때 팟캐스트처럼 들어왔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평소 고민하던 것들에 대한 해답을 찾거나 정리하기 어려워 남겨두었던 것들을 어느 샌가 정리해서 친구 앞에다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면서 녹음하고 짬을 내서 다시 듣기 시작했다. 말한 것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기록하기 위함이었다.
친구들에게 말하는 내 말투와 속도를 느끼면서 너무 성급하거나 먼저 말하고 싶어하는 상대방의 말을 끊고 싶어하는 내 성향이 드러나서 상대방이 불편했을 것 같은 순간들을 다시 느끼고 반성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기록과 자기 반성을 위한 녹음을 듣는 건 꽤나 즐거우면서도 힘든 작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힘든 작업은 의외로 녹음을 통해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었다. 이어폰을 통해 들리는 내 목소리가 귀에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마치 손 안에서 작아지는 구슬을 놓치지 않게 꼭 쥐어야 하는 목표를 가진 사람처럼 변했다. 아마도 내가 평소에 듣던 목소리와 달라서 매번 어색함을 느꼈던 것 같다. 꽤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힘들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문득 ‘내가 아는 내 목소리와 녹음된 내 목소리는 왜 차이가 날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네이버에 검색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를 통해 잠시 지식인이 된 내 궁금증에 대한 정답은 이랬다. 내 귀를 통해 듣는 목소리(이하 ‘A’)는 주로 골 전도를 통해 전달된 소리이고, 녹음된 목소리(이하 ‘B’)는 공기 전도를 통해서만 전달된 소리여서 다른 거였다.
좀 더 자세히 복붙을 해보자면, 목소리가 생기고 전달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폐에서 생성된 공기가 후두를 통해 성대를 통과할 때 성대의 근육이 서로 부딪혀 진동하며 음파가 생긴다고 한다.
A의 경우 : 위에서 만들어진 음파가 입술을 통해 나가지 않고 머리 뼈의 진동을 통해 본인의 내이로 향하는 소리의 방식을 골 전도 방식이라고 한다. 내 귀를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주로 골 전도 방식이 더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공기 전도 방식의 소리도 함께 들리긴 한다고 한다.)
B의 경우 : 위에서 만들어진 음파가 입안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입술을 통해 빠져나오면서 목소리가 나게 된다고 한다. 입술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공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귀의 외이도(구멍)와 고막을 통과해 내이에 도달하게 되면서 들리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을 공기 전도라고 한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두 소리가 다르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았다. 하지만 두 소리가 다르다고 해서 어색하게만 들린다는 게 신기했다.
아마도 A가 내가 더 자주 더 가까이서 듣던 소리였고, B는 내가 평소 듣기 힘들고 멀리서 들리는 소리(사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를 내가 들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여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인간 관계도 자주 볼수록 가까이 있을수록 친근함을 느끼고 덜 볼수록 멀리 있던 사람일수록 어색함이 커지는 게 당연한 것처럼 당연해 보였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많이 B의 소리를 들으면 A와의 어색함이 사라질까? 그리고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소리가 내 ‘진짜’ 목소리인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내 머리 속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내 궁금증에 대한 정답은 이랬다.
지금까지 나는 A가 진짜 내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실제 몸으로 경험해 들은 소리이고 A는 나 말고는 누구도 들을 수 없는 (과학적으로 누군가가 내 귀 속에 청진기를 넣지 않는 이상 쉽지 않을 것이다. 평소 상식으로 누군가가 나를 만나서 내 귀에 청진기를 넣거나 내 귀 속에서 들리는 소리를 궁금하다며 들으려 노력하는 사람은 없기에 ‘들을 수 없는’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래야 A가 좀 더 유니크해지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소리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순 없지만, 내가 실제 체감하고 느끼고 생각하는 소리는 A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현실은 자기 혼자만의 생각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요즘 느낀다. 온라인 책방을 운영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아무리 많이 쌓아놓은들 사람들이 공감하고 찾지 않는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 나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윤형근’이라는 사람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윤형근이 무슨 일을 하며 누구를 만나며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함께 파악해야 보다 정확한 진실, 진짜에 가까워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가 들을 수 없지만, 사람들이 듣고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B가 좀 더 진짜에 가까운 거 아닐까.
살면서 나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진짜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남들이 알 수 없는 내 안의 것들,남들과 다른 내 안의 것들을 천천히 어루어 만지고 달래서 하나 둘 세상에 꺼내는 일들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껏 A를 꺼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들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B가 어떤 소리일지 통화 녹음파일을 더 자주 들어보고 주변 사람들에게 B는 도대체 어떤 소리인지 물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물론 내가 A를 남들에게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 힘들 듯이 사람들이 B를 나에게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이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A와 B 둘 중에 내가 찾는 ‘진짜’ 목소리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A와 B도 내가 찾는 ‘진짜’ 목소리가 아니라 그 ‘진짜’ 목소리가 어딘가를 통해 변화된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진짜’ 목소리는 목소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폐에서 생성된 공기가 후두를 통과할 때 그 언저리쯤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그 소리를 들을 수도 만날 수도 없을 거 같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목소리라면 내가 들을 수 없지만 결국 내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진짜가 무엇이든 그것은 내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