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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거 Oct 12. 2023

고객센터

“네. **텝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영어시험인 텝스 인터넷 강의을 제공하는 업체에서 일한 지 3년이 되었다. 나는 고객 문의 전화를 응대하는 고객 센터 업무를 한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매일 받는다. 사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거는 건 고객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얼굴을 한번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는 두 사람이 질문과 답을 주고받으며 몇 분 정도 통화를 하다가 전화를 끊으면 내 업무의 한 텀이 끝난다. 


 고객을 만나지 않고 목소리로만 응대를 해야 하기 때문에 고객센터 전화를 받을 땐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두가지를 파악하려고 노력한다. 우선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다음으로 어떤 사회적 배경과 상황 속에 있는 사람인지를 파악한다.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목소리 크기만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당하다면 문제가 없다. (다만,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리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 무엇을 궁금해서 전화를 했는지를 잘 모르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지만 어떤 사회적 상황과 배경을 가진 사람인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목소리의 크기 뿐 아니라 자주 사용하는 단어, 말투, 빠르기, 높낮이 등이 필요하다. 컴퓨터나 모바일을 잘 다룰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에게는 간단한 설명이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좀 더 차분히 한 단계 한 단계 설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전화기를 들고 집중하며 전화를 건 사람의 목소리에 집중을 한다.


 종종 목소리만으로도 자신의 매력 속으로 나를 빠지게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 사람들의 목소리는 명쾌하며 거침이 없고 매우 깔끔하게 떨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며 자신이 모르는 바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나중에 내가 회사를 창업해서 우리 회사의 고객센터 담당자를 찾을 상황이 오게 된다면, 꼭 필요한 정보인 당신의 연락처를 달라고 요청하고 싶어진다. 목소리만으로 친절함이나 신뢰감이라는 이미지를 남에게 줄 수 있다는 건, 정말 엄청난 능력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는 높낮이로는 저음이, 속도로는 천천히 말하는 것이, 전반적으로는 강약을 통한 리듬이 명확하게 있는 목소리다. 모든 조건이 똑같아도 얼굴이 잘 생기고 예쁜 사람이 키가 좀 더 큰 사람이 상대방에게 좀 더 큰 매력을 발산하는 것처럼 목소리에도 그런 요소들이 있다. 일반 사람들 중에 자신의 매력을 외모나 패션에서 찾는 사람은 많으나 자신의 목소리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성우, 스피치 강사, 아나운서, 훈련소 조교, 보험사 콜센터 직원 등 목소리에 신경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친절함이나 신뢰감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로 같은 시간, 상황에도 그 시간을 통해 불쾌함이나 위협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과 1시간 넘게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의 목소리를 한 시간 넘게 들어야 하는 일은 체력이 꽤 많이 든다. 좋지 않은 내용이기에 그냥 듣기에도 힘든지만, 더 힘든 건 그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에는 어떤 동물의 괴성 같은, 때로는 대형 칠판이 마치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인양 칠판에 모든 감정을 실어 할수 있는 한 가장 긴 선을 만들며 손톱으로 긁는 듯한 소리들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흥분하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무너지고 다른 소리들이 흘러 넘쳐 나온다. 그럴 때면 목소리는 나쁜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좋은 목소리는 나쁜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아니, 나쁜 이야기는 좋은 목소리로 나올 수가 없다. 타이타닉을 만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수중카메라를 통해 바다 깊이 침몰해 있는 타이타닉을 실제로 처음 보았을 때, 직접 보지 않고 카메라를 통해서 보더라도 가슴에서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고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아바타를 제작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화가 나는 목소리를 수화기를 통해 계속해서 듣고 있다보면 그 사람의 화난 감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히려 보이지 않기에 더 크게 말할 수 있고 더 세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이 더 짙게 다가온다. 전화기 맞은편에 누군가가 보이지 않기에 계속해서 선을 넘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때로는 목소리 만으로는 상대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이비 교주의 목소리는 매우 친절하며 신뢰감이 있었고 피해자의 아버지의 목소리는 자신의 억울함을 목소리에 담아 언성을 높이느라 구겨지고 찢겨져 있었다. 이런 경우는 고객센터 담당자인 내가 확인할 수 있는 길은 사실 매우 적다. 내 판단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목소리로 자신의 정체성을 감추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세상이 되어간다. 생각해보면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을 이용해 사이비 종교 가입, 숨겨진 조건이 많은 보험을 권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보험 광고를 예로 들면, TV에서는 보이는 이미지와 큰 자막들은 혜택만을 크게 보이게 하고, 불리한 혜택은 작은 자막으로 집중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것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목소리만이 표현의 전부인 라디오 광고에서는 유리한 혜택과 불리한 혜택의 비중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법적으로 꼭 말해야 하는 불리한 혜택을 자신들의 유리한 혜택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말할 수 없다. 모든 보험 등 중요 정보 공시가 필요한 광고들은 라디오 광고를 필수로 하는 법안을 제정하면 어떨까 한다.) 목소리가 주는 공포감과 잘못된 정보를 통해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보이스 피싱도 있다.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면, 나 스스로도 목소리로 누군가를 판단하는데는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나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를 받는다. 목소리로 한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난다.


“네. **텝스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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