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과연 소리에도 그 룰이 똑같이 적용되는지 궁금해졌다. 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쓸모로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걸까. 세상을 가만히 듣고 살펴보면서 발견한 소리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유퀴즈를 보는데 세계태권도연맹 시범단 단원과 코치가 나왔다. 4m가 넘는 고공 회전 격파 등 고난도의 발차기 동작들로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서 결승까지 오르는 성과를 보여 출연했다.
"저희는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사실은 가족 같은 후배, 선배들이 많은데, 전 항상 그 친구들이 착지할 때가 너무 초조해서 잘 못 보고.."
"소리로만.. 아 착지 잘했구나"
https://youtu.be/HE8ZrH7Az4Q?t=341
너무 고난도의 기술을 시도하기 때문에 매번 큰 부상의 위험을 감수하고 기술을 수행하는 후배들을 가족 같이 생각해 직접 뛰는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코치의 말이었다. 그리고 겨우겨우 후배가 무사히 착지하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마음이 놓는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어쩌면 소리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배려해줄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겠구나. 누군가가 그래서 소리가 가진 역할이 뭔데?라고 물으면 응 사람을 안심시키고 배려해줄 수 있어라고 좀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가슴을 손으로 살짝궁 두드리면서 내는 소리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듯이, 위축되어 있는 날 어깨를 두드려주는 친구가 만들어주는 어깨의 그 작은 소리가 위로가 되듯, 가끔은 행위가 아닌 소리가 사람을 안심시켜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올리브 영에서 결제를 하려고 계산대에 섰는데, "결제 시에는 볼륨을 잠시 줄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는 안내 멘트가 눈에 띄었다.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는 "경청"이다. "경청"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이며, 그 내면에 깔려있는 동기(動機)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소리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요즘,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 물리적인 들음에도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정말로 물리적으로 다른 소리를 줄이고 상대방의 소리를 듣는 것 자체로도 예의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쿄올림픽이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한 양궁 경기장에서 "파이팅~~~!!!"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는 선수가 등장했다. 소리를 작게 내는 것이 미덕이며 예의인 줄 알았던 양궁장에서 생전 들어보기 힘든 소리였다. 룰 브레이커 같은 느낌의 등장이었다. 김재덕 선수의 파이팅 소리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양궁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를 수도 있구나." 저곳도 소리의 장소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새로운 생각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양궁 경기 중에 "파이팅!" 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실제 TV를 보지 않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속으로 '아, 김재덕 선수가 이번에 나오는구나'하는 것을 바로 떠올리게 될 것 같았다.
테니스의 샤라포바 선수는 테니스도 잘 쳤지만, 공을 칠 때 지르는 괴성이 그녀의 시그니쳐 사운드가 되었다. 좀 더 힘을 얻기 위해 소리를 크게 낸 것일 수도 있겠고, 괴성을 크게 지를수록 상대방은 강하고 거리가 긴 공이 날아올 거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이미 알고서 전략적으로 취한 행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샤라포바 하면 자주 이미지나 어떤 모습이 아닌, 서브를 할 때의 괴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공을 칠 때 지르는 괴성이 그녀를 나타내는 하나의 시그니쳐 사운드가 되었다.
소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목욕탕에 뜨거운 물에 들면 자연스럽게 몸에서 소리가 난다.
"아 시원하다~", "에헤~"
어렸을 때는 그냥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만 보이는 자연스러운 행동과 소리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목욕탕을 간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온탕에 들어가 따뜻하게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 옆에서 어떤 아저씨가 "에헤~"하면서 온탕으로 들어오셨다.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기에 소리가 더 크게 들렸던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에헤~"하는 소리가 어쩌면 몸을 좀 더 차갑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스쳤다. 소리의 새로운 역할을 찾아낸 것만 같은 뿌듯함에 탕 속에서 나는 유레카를 외쳤다.
그 이후로 한참을 지나 친구랑 같이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침에 침대에 누워 있는데 샤워실에서 "우후~" "하!"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찬물로 샤워를 마무리하는 친구가 내는 소리를 들으니, 소리가 체온을 낮추는 것뿐 아니라, 반대로 높일 수 있는 능력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몸의 온도를 올려서 찬물을 상대하는 좀 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소리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소리와 온도의 상관관계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르키메데스가 순금 왕관의 진실을 발견해 낸 순간에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르키메데스가 만약 이 부력이 아닌 소리와 온도의 관계를 발견하고서 유레카를 외쳤다면, 이 세상에서 소리의 역할이 조금 더 각광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도쿄 올림픽 남자 육상 100미터 결승전을 보고 있었다. 100미터 달리기는 육상의 꽃으로 불리기도 하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주목받는 경기이기도 하다. 선수와 관객 모두 긴장하고 있는 순간, "땅!" 하는 출발 소리가 들렸다. 누가 가장 빠른 사람인지 5년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질문에 단 10초만 기다리면 답이 알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1-2초 후 모든 선수들이 갑자기 뜀박질을 멈췄다. 알고 보니 한 선수가 부정출발을 해서 모두 선수들이 다시 출발선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내 곧 다시 출발선에 선 선수들.
그리고 곧 "땅!" 하는 소리가 다시 울렸다. 5년을 기다린 질문이기에 1분이 더 걸린다 해도 그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는 태도를 가진 관중들은 나처럼 숨죽이며 보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또 모든 선수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전에 부정출발을 한 선수가 다시 또 부정출발을 했다. 하늘에 두 번 이상의 땅! 하는 총소리를 낸 죄로 그 선수는 실격을 받았다. 더 이상 결승에서 달릴 수 없어졌다. 그 선수는 슬픈 얼굴로 퇴장했다.
그 순간 어쩌면 100미터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당연히 근력 운동 능력이나 멘털 관리가 중요하겠지만, 또 다른 작지만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스타트 반응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트 반응능력이 좋은 선수들, 즉 출발이 빠른 선수들이 있다. 그것은 반사신경이라는 영역의 운동 능력으로 생각되어왔지만, 생각해보면 가장 빠르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결과에 많이 반영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출발을 먼저 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은 바로 이 세상 누구보다 빠르게 청각 신호를 가장 빠르고 짧게 근육 신경으로 보낼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누구보다 빠르게 먼저 출발하고 싶다는 욕심을 절제하며 그 욕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는 고삐를 풀어주는 그 순간을 가장 빠르게 소리로 듣고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구 상 가장 빠른 사나이가 어쩌면 지구 상 가장 빠르게 출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의 여부로 바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2011년 대구에서 열린 세계육상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세계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가 2번의 부정출발로 실격을 당했다. 욕심을 절제하며 소리를 듣는 능력이 적었기 때문은 아녔을까 생각해봤다.
스타트 반응능력은 실제로 100미터 육상 이외에도 단거리 육상부터 수영, 쇼트트랙 등 많은 스포츠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체육 능력 이외에도 소리를 듣는 능력이 꽤나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우연히 기사에서 '쩝쩝' 먹는 소리에 집중하라. 살이 빠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다.
미국 브리검영대학교와 콜로라도 주립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음은 음식 섭취량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준다. 이를 ‘크런치 효과’라고 부른다”면서 소리와 음식 섭취 간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세 가지 실험을 수행한 결과 이 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소리는 음식 감각을 잊게 할 수 있어 음식을 먹을 때 그 소리에 집중할수록 식사량을 줄일 수 있다
연구팀은 실험 참여자들이 간식을 먹을 때 소음이 들리는 헤드폰을 쓰도록 했다. 헤드폰은 시끄러운 소음과 낮은 소음으로 구분했는데, 연구팀은 시끄러운 소리가 간식을 먹으며 내는 소리를 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결과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그룹은 프렛즐 4개를 먹은 반면, 조용한 소리를 들은 그룹은 2.75개를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엘더 연구원은 “음식을 먹을 때 TV를 시청한다면 우리 몸의 감각이 외부 소리에 집중하게 돼 음식 씹는 소리의 비중이 낮아지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크런치 효과는 처음에는 미미할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이 일주일, 한 달, 일 년 가까이 지속된다면 효과는 커질 것”이라고 했다. 2016년 3월 16일 자 '쩝쩝' 먹는 소리에 집중하라. 살이 빠진다.(송영오 기자, 코메디닷컴)
최근 들어 TV를 보면서 밥을 먹은 적이 많다. 스트리트 우먼파이터 등 재밌는 프로그램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기사처럼 TV의 큰 소리가 음식 소리를 덮어서 나는 더 많은 양의 음식을 섭취했을 뿐 아니라, 먹는 속도도 빨라졌다. 소리가 먹는 양과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을 해보면, 어쩌면 음식을 먹으면서 TV나 스마트폰으로 영상 시청하는 경우가 많아진 요즘, 소리가 지구가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무게를 늘린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사운드 이펙트(Sound Effect, 음향 효과)란, 영화 속에서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사용하는 소리의 연출 기법이다. 영상과 음악에만 사용되던 이런 연출 기법이 실제 사회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고 있는지 발견하는 게 재밌었다. 보이지 않던 것들에 역할과 능력을 하나씩 부여해주는 것 같은 생각에 뿌듯함도 느꼈다.
소리의 이런 영향력과 능력들을 잘 발견하고 활용한다면, 사회에도 필요한 또 다른 건전한(Sound) 효과(Effect)의 새로운 요소로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