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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Feb 21. 2023

1인 워크숍 | 빵에도 가치관이 있나요.


나도 비건빵이라는게 존재하는 줄 몰랐다. 처음 알게 되었을 땐 유당불내증이 있거나 알레르기 체질인 사람들의 영역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내 경우는 비건, 채식,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전에 우유를 먼저 끊은 케이스다. 엄마의 투병 생활로 책을 읽다가 성인에게 과도한 성장 호르몬이 들어있는 우유는 양날의 검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힘겹게 생우유와 라떼를 먼저 끊었다. 빵은 그다음이었는데 쉽지 않았던 이유는 동네에 그 많은 베이커리들 중에 비건빵을 파는 곳 하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건 베이커리는 굳이 에너지를 들여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라서 여전히 아쉽지만 이젠 동네에서 비건 마들렌 정도는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자주 먹는 바게트나 깜빠뉴, 치아바타 류는 서울 나갈 때 동선에 비건 베이커리를 넣어 대량 구매하거나 이도 저도 안될 땐 배송을 이용한다.


경기도민의 비건빵 소비는 주로 이런 식인데 부산은 무슨 복이 있어 이렇게 비건 베이커리가 그득그득 한지. 정말 매력적이면서도 질투가 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빵은 미리 사두면 보관이 어려우니 일부러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에 방문해 넉넉히 사가기로 했다.



꽃피는 4월 밀익는 5월



'한민이의 마크로비오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비건 베이커리가 있었는데 이름이 참 특이하면서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줄여서 '꽃사미로'라고 부르는 게 특히나 더 정겹네. 주택가 골목에 가정집 같은 문도 참 마음에 들고.




빵 나오는 시간은 대체로 오전 11-12시 전후라고 들었는데 비건 원데이클래스 듣고 가니 딱 그 시간이었다.




시간을 잘 맞춰간 덕에 빵이 가득했다. 비건빵 이렇게 다채롭게 많을 일인가! 요즘은 베이커리가 워낙 많아서 이 정도 규모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비건빵을 한 번에 이렇게 많이 진열해놓은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양이 다 소진이 된다는 걸 의미하기도 할 텐데 아직까지 비건 베이커리가 이 정도 규모를 갖추고 있는 건 서울에서도 보기 힘들다. 진짜 인기 많은 핫한 비건 베이커리 카페에 온 것이었다!




마구마구 사서 하나씩 다 맛보고 싶었지만 캐리어 부피와 가방의 크기를 고려해야했다. 어떤 걸 고를지 신중하고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아이와 함께 먹을 빵이 필요하기에 되도록 식빵이나 치아바타 같은 담백한 종류로 골라 담았다. 집에 와서 아이가 홍국쌀식빵을 아주 잘 먹었는데 다 먹고 난 후에도 "엄마 빨간 빵 또 줘요!"라고 외쳤다. 건강하고 구수하고 계속 손이 가는 그런 빵이 너무 좋다.




짭조름한 소금빵 하나는 커피와 함께 나를 위해.




먹으면서 둘러보니 비건에 대한 확실한 소신과 가치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새벽이라는 돼지의 그림과 '생추어리'라는 단어라 눈에 들어왔다. 언뜻 들어봤고 대충은 알고 있지만 가깝게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이야기다. 찾아보니 새벽이는 국내 최초로 감금 시설에서 구조되어 안식처인 '생추어리(sanctuary)'에서 살아가는 돼지라고 한다. 제약회사의 실험용 돼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현실 안에서 농가의 모든 돼지들에게 이런 삶을 주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새벽이의 존재가 하나의 상징이 되어 비거니즘에 대한 인식 전환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것은 참 상대적이다. "비건 그거 되게 어려운 거 아니야?"라는 질문 앞에 불완전 비건 지향자는 고집스럽고 예민한 사람의 포지션에 배치되지만, 이런 공간에 들어와있으면 그저 아직은 두리번거리는 초보자가 된다. 더 앞으로 나아간 사람들이 마련해놓은 길을 편하게 걸어가는 팔로워일 뿐이다.


길이 없는 줄 알고 혼자 낑낑대며 진흙밭을 걸어왔는데 이렇게 잘 마련된 큰 정원이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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