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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 Feb 22. 2023

2박 3일간 제로웨이스트 여행의 쓰레기 기록



지속 가능한 여행의 마지막 포스팅은 2반 3일간 여행을 마친 후 숙소를 퇴실하며 남긴 쓰레기 기록으로 마무리해 볼까 한다. 느닷없이 떠났지만 혼자만의 쉼이 필요했던 타이밍에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으로 의미를 더해 더 풍성하고 영감 가득한 여행이 되었다. 짧았던 시간들을 글과 사진으로 풀어놓고 나니 순간의 기억들이 날아가지 않고 내 안에 잘 정돈된 느낌이라 마음이 뿌듯해진다. 



1인 숙소


혼자 여행에 어떤 숙소를 묵어야 할까 고민했는데 짧은 일정과 이동이 잦은 여행 스타일에 따라 교통의 중심지에 깔끔하고 실용적인 숙소가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렸다.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리뷰가 좋은 '어반스테이 부산 연산'점을 예약했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된 곳이라 위생 상태도 좋은 원룸인데 저렴하기까지 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무래도 혼자 여행은 안전도 중요한데 번화가 오피스텔이라 안심이 되기도 했다.




야경을 생각하고 고른 건 아닌데 뜻밖의 시티뷰를 맞이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으니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에 들어온 느낌인데 내 일상은 아니니 이래저래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바라보는 야경도 나쁘지 않군.



모든 것이 심플 깔끔이었다. 혼자 살면 더 넓은 집 필요 없이 딱 이렇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부릴 공간 없이 그야말로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현실은 그저 복작복작이지만.



요즘은 환경부 지침에 따라 모든 숙소에서 일회용 어메니티가 사라지는 추세라 샴푸 등 욕실용품은 모두 다회용 디스펜서가 비치되어 있다. 물론 난 내 비누를 챙겨가서 이것조차 손 대지 않았다. 불필요한 칫솔, 치약, 빗도 없으니 얼마나 가뿐한가요.




그렇다고 쓰레기가 마음껏 생산될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것들은 페트병에 담긴 물, 슬리퍼, 일회용 키친타월과 수세미와 비닐 등 사각지대가 은근히 많았다. 안심하면 쓰레기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올 수 있겠다 싶은 환경이었다. 

바닥 깨끗한데 맨발로 다니면 안 되나요. 양말 벗고 자유롭게 작은 공간을 활보했다. 요리 안 해 먹으니 키친타월 쓸 일도 없었다. 예전엔 냉장고 안 서비스 음료는 당연히 다 손을 대야 손해 보지 않는 거라고 여겼지만 이젠 시선이 정반대로 달라졌다. 손대지 않으리라.



미리 챙겨간 보리차로 물 끓여서 열심히 마셨다. 이렇게 마시니 보리차도 향긋한 차 마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숙박객들의 좋은 리뷰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것. 에스프레소 캡슐 머신기와 캡슐 4개가 서비스로 제공되었다. 먹지 않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보았지만 커피 앞에 무력한 사람이라 결국은 마셨다. 대신 일부러 더 먹진 말자 싶어 3개 마시고 1개는 남겼다. 아침마다 혼자 고요하게 빵 한 조각에 커피 한 잔이 정말 힐링이었다.




숙소에 체크인할 땐 근처 비건 베이커리인 '비건 스토리'에서 무화과 식빵을 하나 사서 3일 내내 조식으로 조금씩 뜯어 먹었다.



둘째 날 아침,




둘째 날 저녁,




셋째 날 아침.




2박 3일 동안 발생한 쓰레기는 부산역 캐리어 보관함 영수증과 요가 학원에서 한 장 쓴 물티슈, 결국 입장하지 못한 미술관의 입장권과 미리 가져간 비누 한 조각의 패키지,




그리고 빵 봉지와 보리차까지. 체크아웃할 때까지 모은 쓰레기의 양이 이게 전부다. 더 아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겠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완벽하진 못했다. 캐리어 보관함이 오작동될까 혹시 몰라 영수증을 받았고 커피를 마시고 싶어 캡슐 3개를 버렸고 무포장으로 판매하는 작은 빵들보다는 식빵이 든든하고 가성비가 좋은 듯해 비닐에 든 걸 골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을 처음 시작했던 '비 존슨(Bea Johnson)'은 도대체 어떻게 1년 치 쓰레기를 작은 유리병 안에 담았을까. 도대체 어떻게 살았길래. 아직도 멀었지만 적당히 타협하는 제로웨이스터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보련다.




알아서 치워줄 거 알지만 혹시나 비닐이 일반 쓰레기와 함께 무심하게 버려질까 봐 나가는 길에 들러 굳이 따로 분리배출했다. 쓰레기가 여기서 끝은 아니었다. 기차 타기 전까지 캐리어를 보관하며 한 장의 영수증을 더 받았고 비닐 포장된 비건빵을 구매해 집으로 가져갔으니 그것 또한 여행에서 만든 쓰레기다.

그래도 이 정도면 여태까지의 여행 중엔 가장 선방했다. 가족과 함께 특히 아이가 있는 여행에선 이렇게까지 가볍게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의 간식을 따로 만들어가도 여행지에서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먹고 싶어 하니 맛밤 하나를 챙겨도 비닐 쓰레기는 나온다. 현지에서 장이라도 보면 모든 것이 비닐에 담겨 있고 술이라도 한잔하려면 역시나 캔 이나 페트병 쓰레기가 생겨난다. 아이용 손수건을 따로 준비해도 한눈파는 사이에 아이가 식당 바닥에 음식을 흘려 부득이하게 휴지를 한 장 쓸 때도 있다. 남편에게 입 닦을 때 쓰라고 손수건을 올려놓아도 습관적으로 휴지를 한 두 장 뽑아 쓸 때도 있다.

그렇게 모든 순간 쓰레기는 숨 쉬듯 우리 주변을 둘러싼다. 자리를 뜨고 나면 없었던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지만 집 안 창고에 차곡차곡 쌓이다 어느 순간 꽉 차면 문이 열리며 우르르 쏟아져 나오듯 우리집 앞을 엄습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다녀온 지속 가능한 여행은 나의 노력으로 쓰레기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이게 참아야만 하는 영역인지 아니면 즐기면서도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때론 처음이라 불편한 것들도 경험이 늘어나면 몸에 배어 큰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러워진다. 물티슈 없는 삶이 전혀 불편하지 않은 것처럼 다른 것들도 조금씩 그렇게 한 발 한 발 천천히 나아갔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나의 워크숍은 계속될 예정이다. 혼자서 혹은 가족과 함께 가능한 선 안에서 충분히 즐기면서도 지속 가능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걸 내 삶으로 증명해 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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