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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Apr 08. 2024

슈퍼에고 쉬는 시간, 도너츠 만들기

도너츠의 기원을 설명하며 가운데 안 익는다고 했건만, ‘하트’와 ‘똥’은...



아이들은 대부분 요리를 좋아하는데, 시켜줄 만한 게 잘 없다. 너무 사소한 걸 시키면 불쾌해하고, 계속 나서는 걸 제지하다 보면 진실(..)을 폭로하기 쉽다. 그래서 애초에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도너츠 만들기는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기 딱 좋다. 물론 사전 준비와, 튀기는 행위, 이에 뒤따르는 갖가지 노동은 온전히 내 몫이지만, 조물딱거리며 형체를 만드느라 꽤 오랜 시간을 쓰고, 결과물에는 아이의 손길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으니까.


그렇다면 나에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안 돼', 그런 말 대신, '너네 마음대로! 멋대로!'를 외칠 수 있어서 좋다.


1. 도너츠 만들기 키트를 사서, 하라는 대로 반죽을 한다.

(반죽부터 직접 만들 수도 있겠다. 나는 주로 한살림 '현미 도너츠가루'. )


2. 식탁을 깨끗이 닦은 뒤, 아이들에게 반죽을 나눠준다.

(손 씻고 와라~)


3. 마음대로! 멋대로! 만들라고 한다.

(너무 두꺼우면 안 익는다, 정도는 알려준다.)


4. 튀긴다. 이왕 튀기는 거, 튀김파티 고고.

(감자, 고구마, 양파, 깻잎, 오징어, 새우, 쌀면, 다 나오라 그래!)






꽃에 별다른 관심 없이 살다가, 엄마가 되고 꽃을 다시 만난다. 곤충이나 새처럼 아이도, 알록달록하고 하늘거리고 향긋한 꽃들에게 이끌린다. 만지고 잡아뜯고 꺾는 일이 예사.

그럼 나도 모르게, 아니, 솔직히 조금 고민하다가 교훈의 언어를 꺼낸다. 꽃의 입장을 가르쳐야 한다는 슈퍼에고를 따를 수밖에. 셋째쯤 되니 그분도 이빨 빠진 호랑이가 다 되었는데, 어느 날 자동적으로 나왔다.


나: 어, 어, 아냐, 안 돼. 꽃이 아파. 꺾으면 안 돼.

3호/7세: (정색) 왜 자꾸 꽃을 꺾는다고 해. 잔인하잖아...

나: (-.-?)

3호: 딴다고 해야지.


아... 넌 붙은 걸 뗀 거구나... 그런 걸로 하자. 그런 걸로 합시다, 슈퍼에고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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