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달이다
보약 한 제를 선물 받았다. 그것도 귀한 십전대보탕에 녹용까지 상대로 넣었다는 것이다. 반색하며 고맙다는 말 대신 고마움이 가슴 깊은 곳에서 뭉글뭉글 피어오른다. 박복함을 운명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고 있는 내게는 보약이 가당찮은 호사 같기만 하다. 나쁜 것 속에 좋은 게 있고 하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도 보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더니 나를 두고 이름인가. 어릴 때 배추 뿌리만 먹고 자란 나로서는 생애 최고로 호사 중의 호사를 누리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위해 약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만큼 지극히 생각하는 마음이 없이는 어려운 것임을 나는 내 경험에 반추해 이미 터득하고 있음이다.
엄마가 아파서 조퇴한다는 내게 담임선생님이 일갈하셨다.
“인마, 엄마가 아픈데 네가 왜 조퇴하냐?”
선생님은 언짢은 표정이 역력했으나 마지못해 허락하셨다. 조퇴를 하겠다는 말을 하기까지 꾸역꾸역 망설이다 차마 나오지 않는 말을 겨우 꺼냈다. 엄마는 몇 년 전부터 자리보전하고 누워있는 게 다반사였다. 동생을 줄줄이 달고 있는 나는 아픈 엄마도 걱정이 되었고, 혹시라도 엄마가 일찍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린 동생들을 어찌해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 등교하기 전에 엄마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아 보였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얼마 안 있으면 봄방학이 시작되기 전 2월의 초순이었다. 내가 자란 곳은 겨울이면 사위가 온통 눈밭으로 뒤덮이는 산골이었다. 그날 아침도 밤새 쌓인 눈으로 버스는 엉금엉금 기다시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꿈처럼 아득했다. 두 번을 갈아타야만 하는 버스는 눈을 옴팡 뒤집어 쓴 채 기다시피 했다. 학교에서 모서면까지는 겨우 버스가 움직였다. 하지만 쌓인 눈으로 길인지 어디인지 구분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머릿속은 텅빈 듯 난감하기만 했다.
낮에 들어가는 버스는 발이 묶였고 하는 수 없이 걸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 눈이 더 내려 이미 발목을 푹푹 덮었고 바람은 매서웠다. 그 바람은 엄마 걱정으로 어지러운 내 심사만큼이나 사납게 휘몰아쳤다. 한쪽 어깨에는 책가방을 울러 맸고, 한 손에는 면 소재지 철물점에서 산 약탕기가 들려있었다. 무거운 책가방이 어깨를 누르는데 다른 쪽 손에는 무거운 약탕기를 들었다. 혼자서 6km나 되는 눈길을 걷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 생각에 마음이 다급했다.
바람이 몰아칠 때마다 매서운 바람이 내 볼을 사정없이 때렸다. 내 볼은 세게 따귀를 맞은 듯 아팠고 나중에는 계속 몰아치는 칼바람에 얼얼하다 못해 감각조차 없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인적조차 없는 길을 혼자 걷고 또 걸었다. 잠시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이따금 얼굴을 내미는 한 줌의 햇살이었다. 잠깐이지만 햇볕이 들판을 비춰 눈이 부셨다. 나는 고행자처럼 묵묵히 발걸음을 떼었다. 시리다 못해 따가웠던 손과 발도 시간이 지나니 시린 줄 몰랐다. 오히려 후끈후끈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는 오직 엄마 걱정뿐, 혹시 엄마를 잃게 되기라도 할까 봐 조바심에 종종걸음을 쳤다.
드디어 몇 군데의 마을을 지나고 산모퉁이를 돌자 저만치에 우리 마을이 희붐하게 나타났다. 눈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쏟아졌다. 저녁에 버스가 발이 묶일 것은 불 보듯 훤했다. 멀리서 우리 집이 점처럼 자그맣게 다가왔다. 나는 순간 가슴이 덜컥했다. 혹시 엄마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평소 믿지도 않는 하느님까지 찾으며 아니길 빌고 또 빌었다. 눈 속을 헤적이며 끌고 온 내 신발은 옴팍 젖어 질척거렸다. 나는 화급히 뛰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절간처럼 정적이 휘도는 우리 집.
나는 엄마에게 곧 약을 달여 드리겠다며 부엌으로 들어가 불을 피웠다. 전날 한약을 지어 왔지만, 약탕기가 없이 양은 냄비에 슬쩍 끓이다시피 한 것을 엄마는 발작하듯 짜증을 내며 내게 약을 거르라고 했다. 나는 숟가락 두 개를 이용해 삼베 조각에 싼 한약을 돌려서 짰다. 그것이 무슨 효험이 있을까 싶었다. 한약은 약한 불에 뭉근히 정성을 들여서 달여야 할 것이 아닌가. 나무가 다 타고 발간 숯덩이에서 파란 불꽃이 일렁거린다. 나는 재빨리 타오르는 숯 위에 약탕기를 앉혔다.
약이 끓어오르는 기미가 보일 즈음 안방에서 희미한 음성이 들렸다. 방에 가보니 엄마는 몸이 차가워진 채 의식이 없었다. 다급해진 나는 이웃집으로 내달렸다. 촌각을 다투는 그 짧은 시간이 왜 그토록 길게만 느껴졌는지. 다행히 아버지는 이웃 동생뻘 되는 아저씨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집에 와서도 냉큼 엄마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다. 빨리 병원으로 가라는 내 다그침에 ‘돈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돈이 무슨 소용이냐며 아버지를 몰아세웠다.
구급차가 도착했고 병원에 간 엄마는 무사히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잘 먹지 못해 일어난 탈수 증상이었다. 엄마는 링거 한 병을 맞고 언제 아팠냐 싶게 기운을 차렸다. 나는 한약 한 봉지를 털어 약탕기에 넣고 약을 쌌던 흰 종이로 약탕기 뚜껑을 조심스레 여몄다. 숯불에 앉히고 끓기 시작하자 온 집안에 한약 내가 진동했다. 숯을 좀 덜어내 화력을 줄였다. 약이 달여질 동안 난 불 앞을 벗어나지 않았다. 화력 좋은 숯불이 사그라들자 점점 회색의 재로 변해갔다. 마지막까지 남아 약탕기를 달구는 발그레한 불씨를 바라보니 절망보다는 희망이 손짓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얼른 나아서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집안에 온기가 채워지기를 바라며.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 채 누워있는 엄마를 대신해 그 빈자리를 내가 대신 메웠다. 들일을 하다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오면 따뜻한 밥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희미한 전구가 불을 밝히는 부뚜막에서 허리 꼬부라진 노파처럼 구부려 밥상을 차렸다. 부엌 천정은 그을음이 더께가 쌓였고 시커먼 괴물이 나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입술은 계속되는 중노동으로 부풀었다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엄마가 살아있어 좋았다. 엄마가 살아있는 한 동생들 걱정은 아니 해도 되었다. 내 정성이 효험을 발휘했는지 몇 년 시름시름 앓던 엄마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찾아온 보약을 보니 수십 년 전의 어린 내가 떠오른다. 문득 어린 내가 가엾어진다. 어린아이에게 엄마는 자신의 전부이기에 엄마를 잃는다는 것은 곧 세상이 없어지는 것과 같이 엄청난 불안으로 다가온다. 나는 엄마가 아프거나 부모님이 다툴 때면 지구가 순간 폭발이라도 하기를 바란 적이 있다. 그러면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는 불안감도 느끼지 않고 서로 억울할 일이 없었을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모두가 동시에 증발해버리는 일은 지금껏 일어나지 않았다.
한약을 컵에 따라 쭉 들이켜 본다. 바닥에 남은 마지막 찌꺼기까지 아낌없이 핥았다. 보약 한 봉지가 금방 효험이 생길 리 만무하건만 플라시보 효과가 작용한 것일까. 전에 없던 기운이 불끈 솟는다. 어질어질 뒷골 당기던 증상도 말끔히 사라진 것 같다.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정성을 받으니 현실감이 나지 않고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어린 날 내가 다 했던 정성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돌아오다니. 곱은 손을 호호 불며 약 달이던 어린 소녀가 눈 앞에 선연하다. 약을 삼키고 세월을 삼키다 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 소태처럼 쓴 약이건만 내 입에는 꿀처럼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