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점수를 매길 수 없으니까

부끄러운 기록 (3)

by 안녕

(김영란법이 시행되기 전의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 줬는데...'


서운한 마음이 솟구쳤다. 신규 교사로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33명이 넘는 아이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상담했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종례 시간 나누지 않고 늘 아이들 곁에 있었다. 아주 사소한 고민부터 심각한 문제까지 일일이 관심을 보이며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


학기에 한 번씩 학급 단합대회는 기본으로 했다. 그뿐 아니라 방학 중엔 아이들을 데리고 분당에 있는 '한국 잡월드'에도 데려간 적이 있다. 그것도 오로지 버스와 지하철로. 방학 중엔 부득불 아이들을 그러모아 학급 대청소를 하고 피자를 시켜 먹었다. 학급 쿠폰제도를 도입해 열심히 활동한 친구들을 데리고 떡볶이 집에 가서 저녁을 사 먹였다.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질 정도로 그렇게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처음이라 모든 것이 설렜고 좋았다. 2년 동안 공부한 끝에 어렵게 이룬 선생님이란 목표가 현실이 되었으니 그만큼 의미 있게 지내고 싶었기에, 정말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고 상담하고 아껴 주었다.


특히, 반장은 유난히 더 살뜰하게 챙겼다.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어울리며 인기가 좋았던 세정이는 공부하기를 어려워했다. 공부에 대한 조언도 종종 하고, 무엇보다 상담도 자주 했다. 사소한 표정 변화도 섬세하게 캐치하여 방과 후에 남겨 과자나 음료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야말로 100점 만점에 200점짜리 선생님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나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나는 진짜 멋진 사람인 것 같아, 나, '오, 캡틴, 마이 캡틴!' 정도는 되지 않나?라고 스스로 믿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받은 것은 아주 소박한 도시락 가방이라니.


서운하고, 아쉽고, 속상하고, 약간은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이 정도 감정 밖에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깊은 곳을 들여다볼 기회를 스스로 마련했어야 했는데 겁이 났다. 나란 사람의 부족한 점, 부끄러운 점을 들추기 싫어 자꾸만 미루었다. 시간은 흘렀고, 어느덧 13년 차 교사가 되었다.


그날, 감정과는 별개로 도시락은 남기지 않고 잘 나누어 먹었다. 세정이 어머니께도 감사하단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마치 소화되지 않은 김밥이 목 안에 걸려 있는 것처럼.




인정받고 싶었다.

나는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었다.


"쌤이 최고예요."

"쌤이 우리 담임이어서 좋아요."

"쌤 사랑해요."


라는 말을 가능하면 많이 듣고 싶었다. 이렇게 열정을 다해 챙겨주는 너희들에게,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선생님 덕분에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욕망의 근원은 결국 '인정 욕구'였다.


말로도 모자라 더 받고 싶었다. 결국 눈에 보이는 '도시락'의 크기를 나에 대한 인정의 크기라고 느꼈다. 크고 꽉 찬 5단 찬합과 삼각 김밥 두 개에(세정이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삼각 김밥이었다.) 담긴 마음은 분명 같다. 크기와 정비례한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감히, 새벽에 일어나 담임 선생님의 도시락을 챙겨주는 학부모님의 마음을 함부로 평가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담임교사'에 대한 '인정'의 크기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교사.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교사.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사.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하는 행동이라고 믿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그 진심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며 했던 행동이었다는 것은 이제는, 깊이 인정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어쩌면 '내가 이만큼 열심히 잘해주었으니, 너희들도 그만큼 돌려주겠지?'라는 생각이 꿈틀댔던 적, 많다. 주는 사랑에 크기를 가늠하며 받을 사랑을 예측했다. 뜻대로 오지 않으면 혼자서 실망하고 상처받았다.


"어떻게 너희들이 나에게 그럴 수 있어?"

"정말 너무 하다."

"쌤이 너희들을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첫해부터 거의 수년 동안 자주 했던 말이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은 늘 내게 죄송하다고 했다.


- 선생님의 마음을 몰라서 죄송해요.

- 선생님을 실망시켜서 죄송해요.


그렇게 지낸 세월이 오래다. 중간에 김영란법이 생겨 어떤 종류의 선물도 받을 수 없게 되기 전까지는 스승의 날에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떤 이벤트를 해주었는지, 내 생일에 어떤 선물을 주었는지, 소풍날에 어떤 간식을 받았는지를 은근히 기대하고, 또 은근히 다른 선생님들과 비교하며 지냈다. 겉으로는


"저는 그런 거 기대 안 해요."


하며 쿨한 척은 다하고, 속으로는


'내가 잘해줬으니 애들도 잘해주겠지?' 하며 내심 기대했다. 스승의 날에 받는 편지의 개수가 나를 인정하는 점수라고 믿었다. 편지를 많이 받을수록, 나를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훌륭하고 멋진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끄러운 생각을, 참 오래도 하고 살았다.




이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지기도 했고 무엇보다 '남편'의 직언이 도움이 되었다.


"너, 애들한테 잘해주고 그만큼 안 돌아온다고 상처받는 거, 그거 위선이야."


처음 들을 땐 기분 나쁘던 말이 곱씹을수록 와닿았다. 내가 딸에게 잘해주면서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듯이 반 아이들에게도 잘해주면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돌아오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화낼 일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을 쏟는다는 것은 원래 그런 일이니까.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남편과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정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 그 진심이 거짓은 아니지만 그 후에 뭔가를 바라는 마음은 내려놓는 것이 좋겠다고. 어떻게든 인정받고 드러내고 싶은 그 욕망은 이제 다른 것을 통해 해결하는 게 낫겠다고.


선물(편지)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100점짜리 교사가 아니고

적게 받는다고 해서 0점짜리 교사가 아니라는 것을,

사실 나는, 그냥 매 순간 열심히 아이들을 대하는 그 자체로도 꽤 괜찮은 교사라는 것을,

내가 하는 그 일이 당장의 성과보다는 먼 훗날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기에

당장 무언가를 받지 못한다 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느끼게 된 순간.


나는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나의 첫 반장 세정이, 그리고 세정이 어머니, 나에게 이벤트를 해주느라 고생했던 수많은 제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쿨하고 털털한 세정이가 훗날 이 글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겁도 나고 두렵다.

세정이 에게는 진심으로 미안하고, 진심으로 고맙다.


지금, 다시 그때 세정이가 도시락을 내민 2012년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당장에라도 세정이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진짜 고마워. 정말. 그런데 무엇보다 쌤을 생각해 준 그 마음이 진짜, 너무 고마워."라고.

꼭두새벽부터 준비하셨을 세정이 어머니께 드릴 마음은 작은 쪽지에 적어 가방에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세정이 편에 전해드리고.


허나,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는 다시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세정이 와 나를 스친 수많은 제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갚으려고 한다.


이것이 부끄러운 고백을 쓴 진짜 이유이니까.





사진: UnsplashAntoine Dau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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