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00이 동생이니?

by 안녕

세 살 터울의 언니는 뭐든 잘했다.

어릴 적부터 일찍 글을 깨쳤고 수를 익혔다. 전화기를 들어 할머니 집에 전화를 할 정도로 영특했다. 가족들은 언니가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수재'일 것이라며 많이 기대를 했다.


언니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빛을 발했다. 영특한 머리, 차분한 성격, 그리고 좋은 친구 관계는 자연스럽게 언니를 '반장'으로 이끌었다. 언니가 있는 반에서는 으레 그렇듯 언니가 반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순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 시절 엄마는 늘 바쁘게 움직였다. 학교 운동회, 소풍, 그리고 환경 미화 시기가 되면 부반장 엄마와 연락을 하며 갖가지 것들을 준비했다. 선생님 도시락, 반 아이들 간식, 교실을 예쁘게 꾸며 줄 화분. 가끔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큰돈을 써 가며 이것저것을 사면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한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렇게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태생이 약했다. 네 살까지 대학병원에 입원을 밥 먹듯이 했다. 분유를 먹으면 전부 토했고, 밤마다 경기하듯 울었다.


엄마는 아직도 돌을 갓 넘긴 내가 경기를 일으켜 대학병원에 뛰어갔던 일, 너무 어려 혈관을 찾기가 어려워 이마에 링거 주사를 꽂았던 일들을 떠올리며 내 등을 쓸어내리곤 했다.


"으이고... 쟤는 그냥 사람 구실만 하면 될 텐데...."


외할머니, 이모, 엄마의 바람은 그저 사람처럼만 살아라. 살아만 있어라.


였다. 학교를 들어가도 빛이 나긴 힘들었다. 자주 아팠고, 결석도 종종 했다. 운동은 당연히 못했고 공부도 딱히.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저 그림 같은 아이처럼 자주 지냈다. 많이 위축됐다. 누구도 나에게


"너는 왜 그 모양이냐?"라고 말한 적은 없지만


언니에 비해 늘 부족한 나 자신을 바라보면서 열등감을 차곡차곡 쌓았던 것 같다.


야속하게도, 언니와의 비교는 끝이 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6년이 모자라, 중학교에서도 언니는 3년 간 반장을 했다. 도합 9년이다. 9년. 그 학교엔 언니를 모르는 선생님들이 없을 정도였다. 성실했고, 착했다. 공부도 무척이나 잘했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언니는 졸업했다.


그리고 그해, 나는 그 중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게 됐다.




"네가 지현(가명)이 동생이니?"


3년 간 학교를 다니며 따라다닌 말이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언니의 동생이라는 게 밝혀지자 그 후는 일사천리였다. 선생님들의 관심은 꽤나 적극적이면서도 때로는 굉장히 무례했다. 그들은 '애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내게는 '비교'와 '위축'으로 다가왔다.


- 네가 지현이 동생이구나.

- 하나도 안 닮았네.

- 아니, 지현이는 고등학교 가서 잘 지내?

- 지현이는 참 공부를 잘했는데...


하며 말끝이 흐려질 때면 참 난감했다. 지금이라면 당당하게


- 네. 제가 언니 동생이에요.

- 맞아요. 저는 할아버지 닮아서요.

- 네. 언니 잘 지내요. 근데 언니랑 직접 연락하시는 게 어떠세요?

- 흠.. 저는 글을 잘 써요.


라고 받아치겠다고 생각이라도 하겠지만(생각이다! 생각!) 당시는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거니와 난 뼛속부터 이런 말을 하질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던지는 말 한마디, 질문 하나가 자꾸 마음을 후벼 팠다. 언니랑 안 닮았다는 말은,


- 언니는 반장도 하고 다 잘했는데 도대체 너는 왜...?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언니는 공부를 잘했는데,라는 말은


- 언니는 전교 10등 밖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너는 도대체...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의도야 어쨌든 간에(나를 챙겨주려고 했든 단순한 호기심이든) 나는 선생님들의 관심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심지어 중2 때에는 언니 담임을 했던 선생님이 나의 담임이 되기까지 했다. (편애로 유명했던 선생님. 당연히 반장이었던 언니를 무척 예뻐했고, 씁쓸하지만... 나도 그 덕에 예쁨을 많이 받긴 했다.)


6년 간 차곡차곡 쌓인 열등감은 중학교 3년 동안 더욱 견고해졌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성이 되어 마음 깊이 박혔다. 심지어 중2부터는 나도 공부를 곧잘 했음에도 '언니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언니 동생이니까, 언니만큼은 해야지, 언니가 맞지, 언니는 어떻게 했지?


하며 스스로를 검열하고 비교를 했다.

언니를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어느 하나 확실히 선택하지 못하는 양가감정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양심의 가책도 많이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자책도 많이 했다. 무엇보다 내 이름보다 '누구의 동생'으로 기억되는 삶이 조금은 힘들었다.


부단히 노력했다.

열심히 공부했다. 타고난 성격이 내향적이라 적극적인 리더는 될 수 없지만(되고 싶지도 않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성실히 했다. 눈에 띄게 성적이 오르고, 주목을 받자 조금씩 내 이름이 불리기 시작했다.


- 지윤아, 지윤이구나. 지윤이 이리로 와서 선생님 좀 도와줄래?


지현이의 동생이 아니라, 지윤이라고 불린 순간.

진짜 '나'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다시는 어디서도 듣지 않을 말


"네가 지현이 동생이니?"


영원히 지워버리기로 했다.




올해 3월, 처음 입학한 1학년 아이들에게 대뜸 했던 질문이 있다.


"이 중에서 우리 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있는 사람?"


쭈볏쭈볏 손을 드는 아이들을 보며 일일이 호구 조사를 하고, 그중 한 녀석에게 친근하게 물었다.


"네가 현우 동생이니?"


얼굴까지 새빨개진 선우는 "네"하고 대답했다. 나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선우 반 친구들 앞에서 현우의 이야기를 꺼내며 내가 현우의 담임이었다고 말하며 괜스레 거드름을 피웠다. 시작이 어렵지 그 후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아이들의 형제를 찾아다녔다.


- 어머, 너는 00이 동생?

- 너는 사촌동생? 닮았다 얘~

- 그래? 정말? 대박! 00이 동생? 오빠는 말이야... 1학년 때...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이던 그 말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부끄러움은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와 나에게 말했다.


"너, 지금 뭐 하고 있어? 너 지현이 동생이냐고 묻는 거 싫어했잖아. 근데 지금 넌 뭐 해?"


쿵-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머리가 멍해지며, 순간 모든 것이 멈춘 기분.


정말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진심으로 후회된다. 그리하여 쓴다.

내가 만난 모든 00의 동생들을 위한 이야기를.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