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서랍 비우기

나란 인간은 도무지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by 윤태진

고백하자면 남의 물건을 엿보는 걸 좋아한다. 이때 남의 물건이라면 책상이나 휴대폰 따위를 말한다. 물론 상대방의 동의하에 엿보는 것이지 몰래 훔쳐보는 변태는 아니다. 변태가 아니라고 강조하니 뭔가 더 변태스러운 것 같아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엿보는 일은 흥미를 자극한다.

책상이나 휴대폰에 깔린 앱 따위를 살펴보는 것은 사실 상대방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준다. 그 내밀한 공간 안에 그 사람의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성격, 비밀, 취미, 생각 등 숨겨진 이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내 서랍은 나의 복잡함 혹은 단순함을 보여준다. 누가 내 서랍을 들여다보고는 이 사람의 내면은 ‘혼란’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지럽지만 동시에 아무 생각 없이 집어넣는 단순함을 보여준다.


늦은 밤 갑자기 느닷없이 책상 정리에 나섰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금방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갑자기 생겨난 그 정리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서다.

내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가 전부다. 뭔가 작은 물건들이 올라와 있으면 그게 눈에 거슬린다. 휴대폰 액정 보호 필름 안에 먼지 한 톨이 들어가 마음을 심란하게 하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다. 그래서 책상 위의 물건들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선 다 책상 서랍 안에 들어간다. 비염이 심할 경우 휴지가 올려지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몸의 컨디션이 좋을 때면 서랍 안으로 처박힌다. 바보 같은 짓임이 명백하다. 매일 쓰는 볼펜을 꺼내기 위해 서랍을 여닫아야 하는 일은 비효율적이고 답답한 짓이 틀림없지만 마음이 편하고 볼일이라 매번 서랍을 열고 꺼낸다.


책상 서랍을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지가 않다. 다른 사람들은 책상 서랍 정리가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숙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많은 물건들을 대체 어떤 분류로 정리를 해야 할까를 한참 고민해야 한다. 비디오카메라 테이프와 CD는 같은 분류로 묶어야 하는 걸까? 일종의 저장 매체로 보자면 같이 묶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외장하드도 함께 포함되어야겠지? 그럼 카메라는 어떡하지? 카메라는 단독 된 기계로 봐야 하나? 그런데 왠지 카메라와 비디오카메라 테이프가 어울리는 조합으로 함께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외장하드는 사무용품에 포함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인화된 사진은 어쩌지? 카메라와 함께 세 번째 서랍에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외장하드가 있는 첫 번째 서랍에 들어가야 할까? 열쇠고리는? 시계는? 마스크는? 통장은? 도장은? 이런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하다 다시 아무렇게나 쑤셔 넣는다. 꽤나 한심스러운 일이다.

어느 정도 규칙이 있어야 분류를 하고 정돈을 할 텐데 어떤 분류로도 통합될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담겨 있으니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것과 같다. 사실 서랍이 아닌 다른 곳에 놓여야 할 물건들도 많지만 당장 눈에 거슬리니 어쩔 수 없이 서랍 안으로 구겨 들어간다.

매번 쓸모없는 것들은 버리겠다고 다짐하지만 버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분명 언젠간 꺼내 쓸 일이 있을 것 같아 다시 책상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다. 버리는 건 없는데 자꾸 들어가기만 하니 늘어날 수 없는, 너무 딱딱한 서랍은 가득 찰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정리의 시간이다. 답 없는 고뇌와 갈등 역시 반복한다.

나란 인간은 도무지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공부 못하는 애들이 꼭 공부하기 전에 책상 정리를 한다. 특히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면 책상 정리는 물론 방 대청소까지 한다. 내가 그렇다. 책상 정리를 시작으로 방청소, 옷장 청소 등을 했다. 최근까지도 그랬다. 책상이 정리되지 않고 어수선하면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렇다고 책상을 정리 했다고 좋은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역시 말끔히 정리되어있다. 하지만 글은 말끔하지 않은 것 같다.



별로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회사에서 쓰는 책상은 서랍도 비워버렸다. 버리고 비우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몇 개월에 걸쳐 다 비워버렸다.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라도 해두자는 생각으로 비운 것이다. 모든 회사원이 안주머니에 사표를 품고 살 듯 말이다.

버리는 게 쉽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설득하고 안심시키며 과감히 버렸다. 그런데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들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뭐가 있었는지도 벌써 잊어버렸다. 마음도 한 결 가볍다.

글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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