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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22. 2020

정성과 시간을 담아낸 맛

인터뷰 마흔

2017년 4월 16일


“앞으로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하루하루 오늘처럼 살고 싶습니다.”


마흔님은 자신을 사십 대 중반의 남자분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주부라고 소개했어요. 남자분이 주부라고 소개하길래 결혼을 한 유부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즈음은 남자분이 살림을 하는 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결혼하셨어요?라고 물었죠. 그랬더니 마흔님 왈. 결혼은 하지 않았는데 주부래요. 무슨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냐고 했더니.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다며,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차려드리고 집안 일도 하고 있으니 주부라고 하더라고요.

이상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안일 하는 사람을 주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결혼을 하고 집에서 내조하는 여자를 주부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마흔님은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주부래요.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마치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의 언어로 소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친해지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실은 뭐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제가 초대했거든요. 처음입니다. 사람이 궁금했던 건. 대부분 저의 사고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마흔님은 가늠할 수 없어 궁금했어요. 일과 개인적인 영역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스타일이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을 제 일의 영역에 초대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처음으로 글초상화에 초대했죠. 그리고 처음 만난 분에게만 써주던 글초상화를 두 번째 만난 분에게 써준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마흔님은 제가 하지 않던 일을 자꾸만 하게 만들었어요. 그렇게 처음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인터뷰를 통해 마흔님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이며 몇 년 전까지 컴퓨터 관련 일을 하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관련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마음은 이미 방어벽을 친 상태라 더 이상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만 글초상화를 써주어야 하니 공통의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흔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없다고 했어요. 그럼 그냥 떠오르는 숫자라도 말해 달라고 했더니 숫자 7이래요. 러키 세븐이 떠올랐다고. 제 앞에 앉으셨던 많은 분들처럼 행운이 필요한 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을 물으니, 잠시 고민을 하다 빨간색이라고 답했어요. 아마도 이런 질문에 익숙하지 않은 듯했습니다. 빨간색은 그냥 따듯해서 좋데요. 열정도 느껴지고. 그래서 본인과 닮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회색을 닮았다고 했어요. 특정한 색이 없는, 중간 색인 회색이 자신과 닮았데요. 자신에 대해서 꽤 냉철하게 평가를 하죠? ㅎ 적어도 자기 성찰은 가능한 분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음식은 가정식 백반이래요. 일상적으로 먹는 거라 가장 좋다고 했죠.

좋아하는 동물은 없고. 좋아하는 식물은 들깨를 좋아한데요. 아니, 그러니까 좋아한다기보다는 최근에 들깨를 밭에 뿌려 키우고 있고. 매일 조금씩 뜯어먹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 도심에서 들깨를 키워 먹다니 뭔가 생경스러웠습니다.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했어요. 하루하루 오늘처럼 살자가 모토래요. 불만을 갖고 있지만 체념 또한 빠르다고.


지극히 평범한 인터뷰였어요.  무엇을 키워드로 써야 하나 한참을 고민할 정도로 마흔님의 진짜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지 않은 효자 아들이 떠오르더군요. 매일 삼시세끼 어머니를 위해 밥상을 차리는 아들. 그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하며 가정식 백반, 회색, 컴퓨터 제어를 키워드로 잡아 글초상화를 썼습니다.



지금은  마흔님과 결혼해 4년째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글초상화를 쓰면서 마흔님에게 마음이 조금 열렸던 건 사실이에요. 세상의 기준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기준으로 조금은 엉뚱하게, 조금은 어설프게 사는 모습이 나름 순수하게  다가왔고, 어머니를 한결같이 모시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 글을 정리하며 마흔님에게 불쑥 재 인터뷰를 했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는? 하고 물었더니 4라고 답하더군요. ㅋ 웃기죠. 하긴 좋아하는  숫자야 바뀔 수가 있죠. 그런데 숫자만 바뀐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음식도 바뀌고, 아니 심지어 무엇을 좋아했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어요. 어처구니가 없었죠. 아무리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걸 이야기해달라고 했어도 자신이 좋다고 했던 건 기억할 줄 알았거든요.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전부  거짓말을 했었나? 싶었죠. 그렇게 되면 제가 쓴 글초상화도 거짓이 되는 것 같아 뭔가 허탈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흔님의 글초상화를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한번 읽고, 다시 읽고, 또다시 읽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좋아하는 게 바뀌어도 마흔님의 품성은  바뀌지 않는구나. 그날 제가 사람을 제대로 봤구나. 그러니 언젠가 거리에서 저를 만나게 되면 저의 인터뷰이가 되어주세요. 당신이 모르는 당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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