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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08. 2020

그 남자의 춤

인터뷰 스물여덟

2017년 4월 28일


“타투이스트가 되기 전 춤을 추었어요.
다치기 전까지는 제법 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죠.”


스물여덟님은 이십 대 중반의 타투이스트래요. 사람 몸에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죠. 바늘로 그리는 일이라 실수를 하면 돌이킬 수 없데요. 하여 작업을 할 땐 실수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집중한답니다. 그래서 한 작품이 끝나면 탈진할 때도 있다고 해요. 흥미로운 직업이라 한참을 떠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천운영작가의 바늘 이야기부터, 타투를 하고 싶다는 바람도, 그러나 바늘이 무서워서 결국 포기했다는 이야기도.

그림을 전공했냐고 물으니 타투이스트를 하기 전에는 춤을 추었데요. 실용무용을 배웠는데 비보이 활동도 했다고 합니다. 힙합, 팝핀 모두 섭렵했다고 해요. 주위에서 제법 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발목이 다친 후에는 춤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데요. 그림을 그리며 돈을 버는 게 목적인데 타투이스트는 그 목적을 가능하게 해 준다며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어요. 제가 받은 첫인상은 자유로움이었습니다. 무엇인가에 구애받지 않는 스타일.


스물여덟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숫자 4라고 답하십니다. 좋아하는 숫자로 4를 이야기하는 분들은 정말 극히 드뭅니다. 500여 명을 인터뷰하면서 숫자 4가 좋다는 분은 한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적었습니다. 숫자 4가 죽을 사(死)를 연상시킨다며 말도 못 하게 했던 어릴 적부터 경험을 떠올린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나라 엘리베이터엔 4층이 없으니까요. 숫자를 통해 우리나라만의 문화현상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긴 합니다.

어쨌건 스물여덟님이 왜 숫자 4를 좋아하는지 궁금해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싫어해서 좋아한데요. 자신이 숫자 4를 좋아해도 안 죽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어요. 어떤 분인지 감이 오나요? 남들이 터부시 하는 것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분이에요. 그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 가능한 것 같기도 합니다. 전 이런 나쁜 남자 스타일에 끌립니다. 조금 더 들어보겠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을 빨간색이래요. 강렬해서 좋데요. 작고 말랐지만 다부진 몸에 앳된 소년의 얼굴을 한 스물여덟님. 스물여덟님 안에는 강렬한 열정이 매 순간 끓어 넘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 에너지가 저에게도 전달되는 듯했습니다. 갑자기 몸이 후끈 달아오르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그만큼 스물여덟님에게서 강한 에너지를 느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이래요. 많이 먹었는데도 안 질린다고.

좋아하는 동물을 거북이랑 고양이래요. 거북이는 지금 키우고 있는데 너무 귀엽데요. 거북이를 키우는 건 상상도 못 해 봤습니다. 하여 키우기 힘들지 않냐고 묻자 가끔 햇빛이 나면 일광욕만 시켜주면 된다고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합니다. 고양이에겐 시크한 매력이 있어 좋아하는데. 가끔은 고양이에게 가까이 가서 괴롭히고 싶데요. 진짜 못 살게 괴롭힌다는 뜻이 아니라 좋아한다는 애정의 표현이라 이해했어요. 아마도 스물여덟님은 또래의 이십 대 남자들처럼 짓궂고 장난 많은 분 같았어요.

좋아하는 식물을 야자수래요. 야자수를 보면 휴양지가 생각난데요. 하와이도 떠오르고. 바다가 보이는 휴양지에서 쉬고 싶다고 했어요. 야자수가 좋다고 하신 분은 처음이에요. 대부분 자신의 주변에서 자주 보아왔던 것들을 좋다고 하시거든요. 조심스럽게 추측하면 스물여덟님은 현실 너머의 것을 갈구하는 이상주의자인 것 같아요.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먹고 싶은 거 맘껏 먹고 현재를 만족하며 살고 싶다고 했어요. 하, 인터뷰를 정리하는 오늘에서야 알았어요. 스물여덟님 자신의 꿈을 위해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어렵게 견디고 있었던 것. 저 역시 어려운 시기를 겪어 본 적이 있어 가슴이 아프네요. 다행인 건 스물여덟님 자신의 자리를 넓히며 성장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멀리서나마 응원합니다.


춤추는 사람은 경이롭습니다. 온몸으로 리듬을 타고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그 춤이 이제 사람들 몸에 새겨진다는 것 또한 기대됩니다. 스물여덟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숫자 4가 좋다고 좋아해도 죽지 않는 걸 보여주겠다고 호기롭게 도전하는 남자. 열정적인 빨강을 닮은 20대의 남자. 거북이를 키우며, 야자수를 그리워하는 남자. 무엇보다 몸의 언어를 정확히 아는 남자. 이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초상화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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