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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09. 2020

낯을 가리는 작은 나무

인터뷰 서른

2017년 5월 31일


“배우란 분출하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전 조용하고 참는 성격이라 어려울 때가 있어요.”


서른님은 이십 대 중반의 대학생입니다. 졸업을 앞둔 4학년이래요. 어려서부터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고 배우들을 따라 연기하는 게 좋아 연기를 전공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해요. 배우란 분출하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서른님은 조용하고 참는 성격에다 낯을 심하게 가려 어려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래요. 게다가 아직 많은 경험이 없으니 자신 안에 꺼내야 할 것이 없을 때 연기를 계속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데요. 게다가 낯을 가려 사람 사이의 문제가 가장 어렵다고 해요.   

남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요. 작가도 표현하고 드러내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저 역시 조용하고 참는 게 쉬운 사람이라 글 쓰는 게 쉽지 않았어요.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아무것도 쓸 수 없어 포기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안의 뭔가가 끊임없이 충돌질 했어요. 글을 쓰라고. 아니 글을 써야만 한다고. 저를 부축인 충동의 근본이 뭔지 모르겠지만 많은 어려움 끝에 글을 쓰기 시작했죠.

가장 어려웠던 건 조용하고 참는 성격의 저를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성격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주어지면 다른 반응을 하도록 노력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전에는 제 권리를 침해당해도 화를 낼 줄 몰랐습니다. 그저 참았죠. 정말 바보처럼 참기만 했어요. 화를 내면 상대방이 몹시 곤란할까 봐 화를 내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전 늘 화내는 사람의 상대방으로 살아왔거든요. 그 곤란한 마음을 잘 아니 화를 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젠 화를 내려고 노력합니다. 소리치고 물건을 던지는 표현이 아니라 화라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받아들였고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상대보다 지금 - 여기 나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거죠. '화'는 저에게 가해지는 불합리,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그렇게 화라는 감정을 풀어내니 제게 화를 내던 사람들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순간 많은 것들이 달라졌어요. 화를 표현하면 모두 내게서 떠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제 말을 잘 들어주더라고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것. 그것이 나를 바꾸는 원칙 중에 하나였어요.

또 있어요. 낯 가림이 심한 제가 했던 방법 중 하나가 글초상화였습니다. 타자기를 들고 무작정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써주면서 제 낯가림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글초상화 프로젝트는 소심한 저를 위한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이기도 했네요. 그렇기에 더 애착이 갑니다. 아이고 제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서른님도 지금 즘이면 분명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셨겠죠? ㅎ


서른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숫자 3이라고 합니다. 삼각형이 떠오른데요. 완전하지 않은데 채워진 느낌이라 좋데요. 인터뷰이들의 5/10이 숫자 7을 좋아하고 3/10 정도가 숫자 3을 좋아한다고 대답해요. 대부분 숫자 3을 안정적이라 좋다고 하는데 서른님의 표현이 신선했어요. 완전하지 않은데 채워진 느낌. 어떤 느낌일까요?

좋아하는 색깔을 파란색이래요. 시원해서 좋데요. 무엇보다 하늘색이니까 좋다고 해요. 많은 분들이 파란색을 좋아하는 건 하늘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 된장찌개랍니다. 다른 곳에선 절대 먹을 수 없으니 좋데요. 흥미로웠어요. 맛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다른 곳에선 절대 먹을 수 없으니 좋다니. 아마도 서른님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친밀한 관계를 맺는 분으로 유추됩니다. 친밀한 관계가 아니면 관계를 맺지 않죠. 그러니 사람 관계가 어렵다는 말이 이해가 가네요.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인데 시츄를 기르고 있데요. 이 녀석이 얼마나 시건방진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가 있데요. 그래도 그 녀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고 해요.

좋아하는 식물은 나무래요. 구체적으로 어떤 나무일까요? 물었더니. 그냥 엄청 커다란 나무면 다 좋데요. 위로 쭉 뻗어있는 나무. 찾았습니다. 서른님이 원하는 모습. 그것이 서른님의 찐 모습이겠죠.


서른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저는 조용하고 참는 성격, 낯을 가리는 성격을 키워드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엄청 커다란 나무를 꿈꾸는 작은 나무를 상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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