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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10. 2020

우리가 이 별에 온 이유는 존재하기 위해서다

인터뷰 스물아홉

2017년 5월 31일


“시를 쓰고 있어요.”


스물아홉님은 사십 대 중반의 주부입니다. 결혼 전에는 공무원 생활을 했었데요. 결혼 생활과 병행하기가 힘들어 그만두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다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는데, 그때 미용실도 운영해 보고, 최근엔 요양보호사로 활동했었다고 해요. 작고 왜소한 몸에 비해 직업이 굉장히 다이내믹했어요. 저 작은 몸으로 어떻게 그 많은 일들을 해냈는지 의아할 정도였죠. 보기보다 강단이 있는 분이었어요.


스물아홉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었더니 숫자 7을 말씀하셨어요. 별다른 이유는 없데요. 그냥 행운을 줄 것 같아서 좋아한데요. 좋아하는 색깔은 노란색이라고 해요. 밝아서 좋데요. 좋아하는 음식은 특별히 없데요. 식탐도 없고, 음식 욕심도 없이 다 잘 먹는데요. 좋아하는 동물도 없데요. 아기 다루듯 예쁘게 살펴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다고 해요. 그 시간에 오히려 내 사람들에게 더 신경을 쓰겠다고 하셨어요. 좋아하는 식물도 특별히 없데요. 그저 천하 만물이 다 좋데요. 특히 별을 좋아한다고 해요


인터뷰가 너무 빨리 끝났어요. 게다가 모든 질문에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그도 아니면 없다고 말씀하셔서 스물아홉님을 충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ㅠ 아마도 초상화를 써준다고 하니 얼굴 묘사 정도로 생각하셨나 봅니다. 간혹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처음엔 얼굴 묘사 정도로 끝을 내려고 했죠. 그런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뭔가 기계적으로 글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얼굴을 묘사하는 건 지극히 한정된 단어를 돌려쓰는 것뿐이거든요. 그래서 인터뷰를 해 내면의 초상화를 써드려야겠다며 아이디어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글초상화가 얼굴을 묘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간혹 인터뷰이만이 갖고 있는 아우라를 잘 표현하기 위해 묘사를 하곤 합니다. 어쨌건 스물아홉님처럼 인터뷰가 아무 소득 없이 짧게 끝날 때 가장 난감합니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10년 후에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스물아홉님이 빙그레 웃으며 시를 쓰고 있을 겁니다,라고 답하셨어요. 너무나 뜻밖의 말에 제가 시요?라고 다시 물으니. 실은 시를 쓰고 계신데요. 별에 대해서 시를 쓸 때 가장 즐겁데요. 이런. 스물아홉님의 진짜 모습을 찾았습니다. 


제 질문에 단답형으로 말씀하시는 분들은 대체적으로 두 부류로 나눠집니다. 첫 번째 부류는 평소에도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자신을 감추고 사는 분들. 두 번째 부류는 이 세상 가치를 모두 초월해 사는 분들. 전 스물아홉님이 전자라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동물도 없고, 식물도 없다고 해서 뭔가 감추지 않고서야 어찌 없겠냐, 고 단정지은 거죠. 그러니 천하 만물이 다 좋다고, 별이 좋다고 하신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죠. 어쨌건 스물아홉님은 세상 가치를 초월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에게 좋아하는 동물이 뭐냐, 좋아하는 숫자가 뭐냐, 는 질문은 그분 기준에서 중요한 게 아니니 답이 짧아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그분의 찐 모습을 찾을 수 있어서.


스물아홉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스물아홉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시인들이 왜 별을 닮았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식탐도 없고 욕심도 없고 천하 만물을 다 좋아하는, 순수한 사람들이라 이 어두운 세상을 빛내기 위해 내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 스물아홉님의 세상 초월적인 태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좋고 싫음도 없는, 옳고 그름도 없는 가치판단이 무의미한 존재. 존재함 그 자체에 대해 글로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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