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의 돈, 엄마의 돈
Chapter3. 돈과 삶의 무게
3-1. 어린 시절의 돈
"사야 할 게 있어서."
어릴 적 ‘돈’은 나를 불안하게도 했고,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였다.
왜곡된 기억일 수도 있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어린 시절의 돈은 그런 의미였다.
부모님은 쉬는 날이면 늘 시골로 향했다.
타지에 홀로 계신 할머니를 챙기고,
친인척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주변의 일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럴 때면 나는
부모님이 필요할 때 쓰라고 두고 가신 ‘비상금’에 손을 댔다.
싱크대 옆 서랍장을 열면,
항상 부모님이 남겨둔 돈이 있었다.
당시 내 용돈은 200원, 300원,
많을 때는 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침에는 제티를 사 마시고,
하굣길에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친구와 나눠 먹고,
조금씩 모아 장난감을 사곤 했다.
처음에는 그 비상금으로
아껴 먹던 맛있는 간식을 덥석 사 먹었다.
그러나 점점 커 갈수록
친구들과 더 재밌게 놀기 위해,
혹은 친구들과 함께하기 위해
장난감을 사는 데 돈을 쓰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내게 가족과의 즐거움보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뒤처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은
모두 따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용돈은
그 즐거움을 누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싱크대 옆 서랍장에서
안방 서랍장으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이미 알고 계셨겠지만,
처음에는 모르는 척 넘어가 주셨던 것 같다.
그러다 금액이 커지고,
그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일이 터졌다.
"경찰서 가자!"
어머니는 나를 엄하게 혼내셨고,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손댄 어머니의 비상금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쓸 돈’을 직접 벌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부모님 몰래 낯선 아저씨들이 시키는 소일거리로 용돈을 벌고,
게임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돈이 어린 내가 가진 ‘돈에 대한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워 줄 수 있는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돈이 내가 어릴 적 느꼈던 외로움을
견디게 해주는 도구였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단순한 호기심,
혹은 못된 장난이라 여겼을지 모르지만,
내겐 그것이 외로움이 주는 거대한 불안을
해결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돈은 좋은 하인이지만 나쁜 주인이다."
—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어린 시절의 기억은 평생의 보물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우고 싶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 영화 《스탠 바이 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