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는 따뜻함을 알리는 시작을 봄 언저리라 한다. 또 누군가는 추위의 끝을 알리는 이 시기를 겨울 끝자락이라 칭한다. 같은 날을 두고 다른 표현을 하는 것은 상반된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한쪽은 겨울을 딛고 서있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봄을 밟고 있는 것이다.
동일한 현상을 두고도 해석을 달리 하는 까닭은 본인이 딛고 있는 판을 중심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최근 웹툰 작가가 자녀의 학교 문제와 관련된 스토리를 게시하고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다하다 이제는 웹툰으로까지 민원을 제기하다니 참 대단하다. 난 그 만화를 보지는 않았다. 들은 요지는 교사 탓이란다. 그 작가는 자기주장을 당당하게도 내세운단다. 아마도 교육하는 교사들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참 만만한 것으로 내려다보는 것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넘겨짚게 된다.
언급한 문제의 본질은 보육과 교육의 혼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웹툰 작가의 불만은 보육이었다. 하지만 해결안이라고 내세운건 교육을 건드린 꼴이었다. 의료와 서비스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나타난 문제는 의사의 친절에 대한 일부 환자들의 불만이다. 의사로부터 잘 치료받으면 충분한 것임에도 환자들은 서비스를 받는 주체로 착각하고는 그 아픈 와중에도 대접이란 걸 받고 싶은 꼬락서니를 드러낸 것이다.
교사 역시 잘 가르치는 것으로 제 몫은 다한 것이다. 늦게까지 학교에서 데리고 있는 것은 교육이 아닌 보육의 영역이다.
디딤판부터 잘못되어 있음에도 논란을 촉발시킨 당사자는 정작 모른다. 별로 발끈할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 나라에서 교사란 직업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전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