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작품 피칭에는 한복이 제맛
2017년 5월에 웹소설 <탐정 홍련>을 론칭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운영하는 플랫폼 저스툰(현재 코미코)에 연재를 시작했다. 첫 웹소설이라 떨리기도 했다. 웹소설 연재를 하니 공모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 손에 쥔 작품을 잘 써야 했다.
어느 날,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마켓에서 E-IP피칭을 한다는 공고를 봤다. 일단 'E-IP'라는 용어가 낯설어서 검색해 봤다. Intellectual Property Right의 약자로 한국말로는 지적재산권이다. 작품의 영상화를 위해 IP를 피칭하는 대회였다. 단 하루 피칭을 하고 나머지 비즈니스 데이에는 내 작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미팅을 한다. 선정되면 주최 측에서 비행기표와 호텔을 제공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가기도 했다.
모집요강을 읽어보니 <탐정 홍련>도 참가할 수 있었다. 당장 담당 에디터에서 전화를 걸었다. 이제는 혼자 공모전에 참가할 수 없다. 회사와 함께 개발 중인 작품이라 협의과정이 필요하다. 협의를 거쳐 참가하기로 했다. 대신 피칭은 작가인 내가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먼저 작품 소개 및 개인 정보를 입력해서 회사로 보내면 에디터가 최종 수정해서 응모했다. 그리고 이 작품음 만장일치로 E-IP 피칭 작품으로 선정됐다.
만장일치?
참가작을 공지하는 언론보도에 '만장일치'라는 단어가 쓰여있자 기쁘면서도 걱정이 됐다. 만장일치인데 수상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한 작품을 선정해 1000만 원의 상금을 주는 제법 큰 행사였다. 어떻게든 수상하고 싶었다.
우선 이 행사 참가작으로 선정되면 피칭 교육을 받는다. 수 백 명 앞에서 피칭하는 큰 행사이기 때문에 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위즈덤하우스에서는 PPT에 들어갈 삽화를 지원해줬다. 나는 편집할 줄도 몰랐지만 피칭을 위해 짧은 영상을 편집했다.
차곡차곡 준비를 하면서도 머릿속에 '만장일치'가 떠올랐다. 심사위원들 모두 내 작품에 호의를 갖고 있다는 말이니 더 신경 쓰였다. 당연히 열심히 했다. 그런데 나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다른 작품들도 모두 열심히 준비했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저 한복 입고 피칭할게요.
나는 에디터에게 말했다. 몇 년 전, 임신한 상태로 작품 피칭 대회에 나가야 했던 적이 있었다. 임산부가 피칭하는 보는 사람도 힘들도, 마땅히 입을만한 옷도 없어 결혼할 때 맞췄던 한복을 입고 피칭한 적이 있었다. 조선시대 화장품 소재 스토리라 잘 어울렸다.
이번 작품도 사극이니 한복을 입겠다고 했다. 에디터는 '작가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를 수 차례 물었다. 나는 농담으로 에디터에게도 같이 입자고 했었다.
다른 피칭 대회를 참가했을 때, 강사가 '절대 뭘 준비했는지 당일날까지 공개하지 마라'라고 했었다. 내가 한복을 입고 피칭하는 건 나와 에디터만 알기로 하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피칭 날.
나는 대본을 외우면서 부산 미용실에 앉아 한복에 어울리는 머리를 했다. 그리고 행사장 화장실에서 한복으로 갈아입었다. 겉옷에 코트를 걸치고 지정된 자리에 착석했다. 전날 리허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속상했지만 계속 대본을 연습했다.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돼 무대에 올라갔다. 무대의상으로 한복은 화려하고,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E-IP 피칭 분야는 모두 회사 직원이 피칭했는데, 내 작품만 작가가 직접 피칭했다. 작품의 분위기와 줄거리 등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다. 떨렸지만 흡족하게 피칭하고 내려왔다. 원고를 틀리지도 않았다. 리허설 때 발음이 어렵거나, 헷갈리는 맥락을 모조리 지웠더니 한결 수월했다. 분위기도 좋았다. 수상을 떠나 내 작품을 잘 전달할 수 있어 만족했다.
며칠간의 비즈니스 미팅을 마치고 시상식 날, <탐정 홍련>은 E-IP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천만 원도 손에 쥐었다. 이날을 위해 서울에서부터 함께 준비하는 위즈덤하우스에도 감사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무슨 배짱으로 한복을 입었는지. 간혹 지금도 미팅을 하다 보면 '부산에서 한복을 입고 피칭했던 작가님이 계셨는데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
그거 접니다.
피칭 공모전은 일반 공모전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이 대회를 준비하는 내내 이 작품이 영상화되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비주얼이 강한 대회기 때문에 영상, 일러스트, 음악 등 준비할 것이 많다. 그래서 오감이 즐거운 공모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