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 백골단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지수는 서울대는 아니었으나 서희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합격증을 받아 든 종세는 지수를 향해 만세를 불렀다. 숙희는 상고에서도 내내 일등을 놓치지 않았고 졸업한 뒤 곧바로 한국은행에 들어갔다. 지수는 종기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종기가 공부를 잘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대학은 여고와는 또 달랐다. 갑자기 어른이 된 듯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인데, 서희는 어디서든 어른 대접을 받는 것이 신기했다. 남학생들은 대학생이 되고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무슨 재주들이 그리 많은지 대학에서는 서클들이 넘쳐 낳고 학생들은 이곳저곳을 몰려다니며 모임과 모임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을 쪼개 경쟁적으로 미팅을 해댔다. 그러나 대학은 이중적이었다. 한쪽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고, 한쪽은 자유를 부르짖고 있었다.


전두환은 박정희보다도 독했다. 백골단은 서슴없이 대학을 침범했다. 사냥을 하듯이 학생들을 곤봉으로 내리치고 닭장이라 불리는 버스에 처넣었다. 지수가 그 닭장에 처박힌 것은 백골단의 고의가 아니었다. 백골단은 닭을 몰듯이 학생들을 몰았을 뿐인데 지수는 그 무리에 속해 닭장에 주저앉쳐졌다.


경찰은 지수의 신원조회 결과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경찰은 지수가 학교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묻지 않았다. 끌려온 모든 학생이 분류되어 석방되거나 이송되었지만 지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얼마 뒤 안기부에서 나와 지수를 데려갔다. 전두환은 중앙정보부를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꿨다. 함께 있던 학생들은 지수가 지도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수의 대학 친구로부터 연락을 받은 서희는 소스라쳤다. 아침에 미팅이 있다고 치마를 입고 나간 애가 데모로 경찰에 끌려갔다니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서희는 종세에게 연락하고 종세는 종한에게 연락했으며, 종한은 육사 동기인 안기부 간부를 찾았다.


종한은 안기부의 육사 동기에게 지수는 절대 데모를 할 아이가 아니며, 지수는 할아버지 종대의 이름을 알지도 못한다고 했다. 아침에 미팅을 한다고 치마를 입고 나간 아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어이 종한이! 이거 조심해야 돼! 너 다칠 수도 있어!"

"괜찮아 다쳐도 돼! 걔 내 친조카 아니 내 딸이야! 인마!"


종한은 얼마나 급했던지 용산의 육군본부에서 직접 지프를 몰고 남산의 안기부로 달렸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끌면 그 새 지수의 몸에 손을 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종한은 거의 안기부의 문을 박차듯이 들어가 지수를 꺼내왔다. 육사 동기는 내가 너네 부대에서 이렇게 설레발이 쳐도 되냐며 종한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종한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광주에서 멀쩡한 시민을 잡아서 묶고 때리고 질질 끌고 다니며 종국에는 총으로 시민들을 쏘는 것을 종한은 똑똑히 봤다. 전쟁이 아니면 사람은 죽이지 말고, 뭐든 너무 독하게는 하지 말라는 형수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종한은 광주에 있었던 내내 충혈된 눈으로 잠들지 않으려 했다. 잠결에 총을 잡을까 무서웠다.


종한은 안기부에서 낚아채 듯 지수를 꺼내 차에 태웠다. 다행히 지수는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집으로 가는 내내 종한은 지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실 종한은 지수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혼을 내야 하는 건지 위로를 해야 하는 건지 설명을 해야 하는 건지 어찌할지를 몰랐다.


종한이 지수의 집에 도착했다. 서희와 종세가 얼굴이 하얘져서 문 앞에 나와 있었다. 종한은 지수를 내려 주면서 평소 그 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형수"

"곧바로 빼내 왔어요. 손 끝도 못 대게 했습니다. 뭐라 하지 마시고 그냥 오늘 밤은 재우세요. 하하하"


서희는 종세를 내보내고 지수의 몸을 살폈다. 지수의 얼굴과 온몸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다행히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서희는 그제야 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서희는 지수에게 이게 어찌 된 일인지를 묻지 않았다. 서희는 한참 동안 겁에 질린 지수의 눈을 보고 있다가 입을 떼었다.


"엄마도 중정에 끌려간 적이 있어. 할아버지 때문이었지"

"할아버지는 독립군이었지만 북한군이었어. 굉장히 높은 사람라고 했지만 얼마나 높은 지는 모른다"

"다만, 우리 집은 그런 할아버지 때문에 평생을 쫓겨 다녔다"

"그래서 너도 그곳에 끌려갔던 거야. 엄마는 할아버지 생사도 모른다. 찾을 수가 있겠니? 찾은 들 만날 수가 있겠니?"

"아무튼 너는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끊어야 한다. 절대로 경찰 같은데 잡혀가는 일을 해서는 안돼!"

"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삶을 살았고, 엄마랑 아빠는 할아버지의 삶을 이어받았지만 너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있어서도 안되고"

"조국이나 민족 그런 거 말고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면 돼 알았지?"


그 날밤 지수는 안방에서 서희와 종세 사이에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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