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 네 할 일

From 1919 to 2022

by 시드니


1919년 3월 1일, 분옥이 열네 살 되던 해였다. 누런 군복의 일본 군인들이 떼를 지어 먼지를 일으키며 조선의 독립 만세를 향해 총을 쏘았다. 누런 군인의 떼와 총소리가 세상을 뒤덮었다.


분옥의 아버지 종식은 이불로 겹겹이 분옥을 둘러 방 한구석에 몰아넣고 절대로 이불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다그쳤다. 겁먹은 분옥의 눈에는 종식의 손에 솟아난 굵은 핏줄이 보였다. 종식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고, 분옥의 어머니 명신은 종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가면 죽소! 분옥 아배"

"아니 가면 또 어째 살겠소. 여보 우리만 살 수 있겠소"


분옥은 명신이 나이 서른이 되어 낳은 딸이었다. 종식과 혼인한 지 10년이 되었지만, 명신은 대를 잇지 못했고 집안에서는 종식에게 첩의 자식을 낳아오든지 양자를 들이던지 결단을 내라고 종식을 압박했지만, 종식은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명신은 천신만고 끝에 분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딸을 낳은 명신은 꺼이꺼이 통곡했다.


하지만 종식은 커가는 분옥을 눈에 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유독 분옥은 종식을 따랐고 명신은 그런 분옥을 시샘하듯 흘겼다. 세 사람의 행복은 매일 밤 담을 넘어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종식은 분옥이 신여성이 되길 바랐다. 명신은 질색했으나 종식은 이제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하면서 분옥은 반드시 신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고집했고 분옥은 그렇게 이화학당에 입학했다.


분옥은 그날 만세운동이 있을 것을 미리 알았다. 학당의 언니들이 만세운동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분옥은 당연히 언니들을 따라나서야 하는 것으로 알았지만, 언니들은 어린 분옥을 부르지 않았고 그날 아침이 되자 어디서부터 인가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종식도 그날의 만세운동을 미리 알았다. 아니 알았다기보다는 이미 거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과 딸밖에는 모르는 명신과 아직 어린 분옥에게는 앞으로 있을 큰일을 말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종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허겁지겁 집에 들어와 분옥을 이불에 감싸 숨기고, 명신에게 굳은 표정으로 다시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나는 총소리와 만세 소리에 놀란 명신은 남편의 굳은 얼굴을 보고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은 직감했다. 명신은 종식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가면 죽소! 분옥 아베 우리는 우 짜오"

"아니 가면 또 어찌 살겠소. 여보 우리만 살 수 있겠소"

"무탈할 것이니 걱정 말고 분옥이 데리고 얌전히 있으시오"


그것이 끝이었다. 명신은 감옥에서 죽어 나온 종식의 시신이 담긴 수레에 대고 곡을 했다. 분옥은 죽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명신은 분옥에게 거적에 쌓인 아비의 주검을 보여주지 않았다. 민들레 홀씨가 하늘거리던 날 분옥이 이화학당에 처음 가던 그날 종식은 분옥을 학당에 데려다주고 문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 할 일은 끝났다. 이제는 네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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