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 우리 이제 칸으로 간다
From 1919 to 2022
드디어 종대의 기록이 완성되었다. 남북한은 종대의 기록을 서로 사용하는데 동의했고, 북측의 자료를 받은 지수는 북한영화 전문가인 한 교수에게 자료를 넘겼다. 한 교수는 지수가 효근으로부터 소개받은 북한영화를 연구하고 있는 한국영화사 교수였다. 국정원도 그를 알고 있었다. 지수는 한 교수가 어떻게 한국에서 북한영화를 연구할 수 있는지가 의아했지만, 그가 해방 이후 남북으로 갈라져 끊어진 한국 영화사의 실낱같은 맥을 잇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나이도 어린 그가 참 대단해 보였다.
한 교수도 신이 났다. 어찌할 방법 없이 공허한 연구를 이어왔던 그에게 남북한 합작으로 다큐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절로 흥이 났고, 종대의 기록을 넘기던 북측 관계자들과 그동안 궁금했던 북한영화에 관하여 끝없는 질문과 토론을 이어갔다. 한 교수는 길지 않았던 그 시간에 마치 통일이라도 된 듯이 눈을 반짝였고, 북측 관계자도 한 교수의 북한 영화에 대한 해박함에 신기해했다.
“허 ~ 거참 ~ 한 교수 간첩 아닙네까? 어째 우리 일을 길케 잘 아십네까”
한 교수가 기록한 종대의 이야기는 일본군이 독립군 종대를 잡으려고 어린 서희와 그의 아내 분옥을 끌고 만주로 가는 열차 안을 헤집고 다니던 그 차가운 겨울의 시간으로부터 기록되었다.
그 열차 안에서 종대는 분옥과 서희를 마주하고도 모른 채 스쳐 지나며 생살을 베는 아픔으로 통곡했고, 해방이 되어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의 장군이 되어서 북한군의 선봉이 되었으며, 서울을 점령한 뒤 미제의 앞잡이가 되어 죽음 직전에 몰린 분옥을 만났지만, 비정한 그의 역사에서 그 만남은 너무나 짧은 꿈이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헤어진 후 죽어서도 그는 자신의 딸과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
종대는 민족의 해방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또 조국통일의 이름으로 전쟁도 치렀지만, 결국 그로 인해 살아 있는 매 순간을 아내와 어린 딸을 그리워하는 허망한 노인이 되었고, 죽음을 앞두고 북의 가족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남긴 후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
북한은 독립군이었으며, 혁명렬사였던 그의 유언을 위하여 남쪽의 아내와 딸을 찾아 종대의 편지를 전했고, 혁명렬사의 흉상으로 남겨졌으나, 그의 삶은 거칠고 고단했으며, 아팠고 외로웠다.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내와 딸에 대한 애잔한 그리움 뿐이었다.
차디찼던 그 겨울 처자식이 일본군의 손에 끌려 가도 모른 채 등져 피눈물을 흘리며 더없이 외로웠던 어느 독립군, 민족을 절단 냈던 허망한 전쟁 속에 처자식을 버려두고 가야 했던 비정한 군인, 평생을 조국을 위해 지치도록 싸우고 또 싸웠지만 정작 자신의 처자식 하나도 건사하지 못한 채 허망히 늙어간 어떤 사내의 인생이 한 교수가 기록한 종대의 삶이었다.
지수와 한 교수는 다큐의 이름을 ‘가족’이라고 지었다. 지수의 생각에 한 교수가 동의한 것이었다. 지수는 종대가 평생을 조국의 이름으로 살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했던 삶은 가족이었고, 그것이 종대의 유언이었으니 제목은 ‘가족’이 좋겠다고 했다.
지수는 다큐가 완성되자 우선 국내외의 각종 영화제에 출품하기로 했다. 사실상 제작을 지원했던 국정원에서는 실적이 있어야 한다며 도와줄 테니 곧바로 개봉하거나 방송사에 넘기자고 했지만, 지수의 생각은 달랐다.
지수는 독립영화가 상업적으로 성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지난 몇 해 동안 혹독하게 경험했다. 지수가 깨달은 독립영화의 유일한 성공방법은 밖으로부터 유명해지는 것이었다. 지수는 이 영화가 밖으로부터 알려지는 것이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제작과정부터가 이슈였고, 제작비용도 국정원 태길이 도와준 덕에 부족함 없이 지원받았다. 작품의 질도 한 교수 덕에 부러울 것 없도록 좋았다. 지수에게는 이번에 기회가 절호의 승부수여야 했다.
지수는 다큐 제작이 진행되면서부터 로저에게 미리 이일을 알렸다. 개봉이 아닌 영화제로 가자는 것도 사실은 로저의 생각이었다. 지수와 하루 직원들 모두는 국내외 모든 영화제 정보를 취합하고 중요도 또는 개막시기 별로 나누어 작품 지원 순서를 정했고, 로저와 효근은 모든 인맥을 동원해서 추천과 로비를 더했다. 지수의 집념에 로저와 효근은 유별나다고 걱정했지만 지수는 멈추지 않았다. 지수는 일에 지쳐 집으로 가는 길에서 흥분한 로저의 전화를 받았다.
“지수 ~ 내가 지금 연락받았어. 우리 이제 칸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