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입 밖으로 쉬이 흘러나오지 않는 아픔에 대하여...
그야말로 '계절의 환승역'이라 부를 만하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습기를 머금고 기쁨과 슬픔, 그리고 옳음과 그름의 경계마저 모호해지는 요즘이다. 여름을 향해 뻗어나갔던 마음이 코끝에 느껴지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다시 우리 안으로 스며든다. 그렇게 가을이 번져간다. 여름의 저편으로 많은 것이 사라져 간다.
두 달 전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호흡 곤란과 함께 극심한 팔다리 저림과 통증을 호소하셨다. 응급실로 달려갔다. 의사가 말했다.
“폐에 염증은 없는데… 코로나 후유증으로 인한 급성 근육통이나 관절염일 수 있어 보입니다.”
입원해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 의료진의 발 빠른 진단과 처치 덕분에 어머니는 며칠 뒤 안정을 찾았다.
퇴원 수속을 밟고 병원을 나서는 날, 내 어깨에 손을 올린 어머니는 행여 중심을 잃고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기주야… 실은 응급실로 향할 때만 해도 누가 바늘로 팔다리를 찌르는 것 같았어. 정말 죽을 만큼 아파서 살려달라고 소리칠 뻔했어. 네 걱정이 더 깊어질 것 같아서 내가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코로나라는 몹쓸 녀석은 우릴 그냥 훑고 지나가는 바이러스가 아닌 것 같다. 인류의 몸과 마음에 끈질기게 달라붙어서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런 후유증 없이 코로나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지만 완치 후에도 다양한 증상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몇몇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 4명 중 1명꼴로 롱 코비드 증상에 시달린다고 한다. 지속 기간과 정도만 다를 뿐이다….
살다 보면 ‘말해지지 않는 아픔’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겪는 괴로움을 자식들 앞에서 쉽게 털어놓지 않는 경우야말로 그러할 터다.
부모의 입 밖으로 쉬이 흘러나오지 못하는 고통, 그 너머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과연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
퇴원 후에도 어머니는 미각 및 후각의 둔화, 피로감 등을 호소하신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씩 코로나 후유증 클리닉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현 상황에선 복합적 증상에 대한 제한적인 치료만 가능하다. 자식 된 입장에서 마음이 답답할 따름이다.
치료를 위해 어머니를 병원까지 모셔다 드릴 때마다 떠오르는, 아니 정확히 말해 귓가에 맴도는 소리가 있다.
응급실로 이동하면서 어머니가 내쉬던 거친 숨소리, 그리고 그날 응급실에서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의료진의 손을 붙잡고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하고 내지르던 절박한 외침의 뒤섞임들을 떠올리곤 한다.
그날 목격한 순간순간의 장면들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은데, 그때 그곳에서 솟아나 내 귀로 날아든 소리들은 여전히 선명하다. 시각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청각이 기억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비록 작아지거나 어렴풋해지더라도 절대 지워지지 않는, 그리하여 영원히 머무를 수밖에 없는 공간과도 같은 소리가. 한평생 우린 그 소리에 둘러싸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때론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때론 우릴 무너뜨릴 수도 있는 소리에….
덧)
여름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제, 오래 닫아두었던 가을의 창문을 열어야 할 시간입니다...
빠르게 사라지는 모든 것이 아름답진 않지만, 아름다운 것들 중 상당수는 대개 빠르게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라는 계절도 그러하죠. 짧은 가을, 부디 소중한 사람의 아픔을 경청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할 땐 상대의 미소만이 아니라 눈물까지 살펴야 할 테죠. 다들 그럴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