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글을 좋아했을까? - 19
사람의 마음은 참 변덕스럽다. 전날에는 굳게 다짐했더라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작게는, ‘이제 식탐을 줄여야지’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손은 음식에 가 있고, 입은 정체 모를 무언가를 씹고 있다.
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진짜 나를 보여주자’고 여러 번 다짐해도,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자기검열을 거쳐도 결국 포장에만 집중한 글을 쓸 때가 있고, 그런 글을 다시 읽으면 부끄러움이 먼저 밀려오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가 잘 나오지 않으면 때때로 지치는 마음도 생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될성부른 씨앗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고 여린 뿌리가 흙 속에서 서서히 영양분을 흡수하면서 조금씩 굵어지고 단단해지는 것이 아닐까. 소박한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마음 한켠에는 멋진 글을 써야 한다는 욕심, 아직 역량이 따라주지 않는 과한 기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라톤을 완주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바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몸을 풀고 예열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페이스로 일정하게 달려야 비로소 목표한 결승점에 도달할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결론이라는 목적지에 이르기까지는 그에 걸맞은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그 과정을 간과했고, 어쩌면 빠른 길만 찾다 보니 글쓰기의 본질을 잊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는 일이 먼저다.
좋은 글과 생각을 통해 파생되는 감정과 사고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 글을 쓰기 위한 중요한 준비과정이다.
뿌리를 굵게 만드는 시간은 언제까지 필요할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1cm였던 뿌리가 3cm, 5cm로 굵어지더라도 상대적인 기준 속에서 더 깊이 있고 넓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계속될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정하고,
내가 나를 한 단계씩 단련하며 전진하는 과정이
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