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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A May 03. 2023

버릴 것은 옷만이 아니었다

단순한 일상이 축복임을 깨닫는 새삼스러운 순간  

반지하 달방 생활을 끝내고

내 집으로 다시 돌아온 지 벌써 두어 달이 지났다.

도배를 하고 컨테이너에 묵혔던 짐을 풀어내고 청소하고 정리하면서

마치 랙이 걸린 영상이 무한 반복되듯

집과 쓰레기장과 재활용 센터와 기부가게를 수없이 오갔다.

그 덕에 이 전 보다 더 쾌적하고 널찍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외부 환경이 다듬어지고 정리가 되고 나니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

유행성 감기인지 긴장이 풀린 건지 과로로 면역력이 떨어진 건지

정확한 이유와 원인을 애써 알아내려 하지 않았다.

그럴 힘조차도 없이 끙끙 앓아누웠기 때문이다.

하루 약 먹고 푹 자면 가뿐히 일어날 줄 알았는데

세월로 낡고 닭은 몸은 1주일이 지나도 나를 일으켜 세우질 않았다.

다행히도 몇 개 있던 마감도 그 바쁜 통에 죄다 끝냈던 터라

그나마 병약하게라도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놔 버렸다.

수능 끝나고 잠잤던 시절처럼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잠만 잤다.


간간히 정신이 들 때면 깔끔하게 정리된 마루로 나와

천갈이로 심폐 소생 시킨 1인용 안락의자에 앉아

햇빛을 마주하고 멍하니 광합성을 하기도 했고,

예전보다 더 정리가 말끔하게 된 책꽂이에서

책등의 제목을 읽어가며 묘한 뿌듯함에 취하기도 했고,

드레스룸에 종류별로 색깔별로 걸려 있는 몇 안되는 옷들을

검지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 주르륵 치듯 건들기도 했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끝내고

20년 만에 귀향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가 모험을 끝내고 

모노톤의 캔자스로 돌아왔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수많은 국지전 끝에 고지를 다시 차지한 군인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귀향의 모티브를 가진 작품들을 열거하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기분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감정은 귀향의 안정감이 아닌

여과 없이 바닥부터 올라온 내 소유욕의 민낯이었다.

소유욕의 재발견이었고, 그 소유욕이 만들어준 존재의 안정감이었다.


유행성 독감에서 회복되자, 일상은 다시 복잡해졌다.

일이 있을 때는 아주 편하다. 그 일만 하면 된다.

목적과 이유가 분명하기에 할까 말까의 고민이 전혀 없다.

하지만 일이 없을 때면 그때부터 일상은 다시 과부하로 랙이 걸린다.

한마디로, 일상이 Job多해진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위안 삼으며 생산성이 거의 없는 일들을 붙들고 

열심히 해도 잘 되지 않는 잡다한 작업을 우선순위 없이 다 하려고 덤빈다.


수첩에 시간표와 일상기록을 적어가며 하루동안 실천한 일들에 뿌듯해 하지만

막상 그런 일과 시간이 과연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한숨과 걱정으로 냉정한 자기비판이 일어난다. 

그렇게 도전했던 많은 일들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자기 의심이 올라온다. 


벌려 놓은 일들, 많은 SNS 채널들과 USB에 쌓여 가는 극본과 소설들, 

쓰다 만 에세이와 푸념으로 가득한 일기까지 

하는 건 많은데 막상 뜻대로 풀리지 않는 앞날인 듯 날카로운 자기 검열이 다시 시작된다.


이전에는 재미로도 취미로도 하는 것이라며 

자기 합리화와 성실함으로 일상을 밀어붙였더랬다.

하지만 겨울 유행성 감기라고 해도 혹독하게 아프고 나니 

철이 드는지 얼마가 남아 있는지 모를 시간의 한계에 

막연한 기대와 희망으로 낭비할 시간이 아직도 많은지도 생각해 봤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은 옷만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오랫동안 똬리를 틀고 있는 희망이라는 포장된 욕심,  

방관자 모드로 바라반 보고 있는 이미 벌린 일들,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일들...

자의식 과잉으로 부풀어 올라 허공에 떠 있는 자아를 

땅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것부터 했다.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고 마음의 욕심을 걸러내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스스로를 내 몰았다. 

이런 과정이 진즉에 있었어야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뭐든 다 할 수 있을 듯한 자기 희망이 있었다. 


심경의 변화는 작년 여름에  내 곁을 떠난 반려견도 한 몫했다. 

평생 함께 있을 듯 무덤덤하게 서로의 존재를 의지했는데 

아이가 가고 나니 빈자리가 아직까지도 느껴진다. 

생로병사의 축소판을 보여준 아이가 

남은 인생 즐기며 즐기며 살라고 깜장 콧등을 내 손에 비비는 듯 

시간의 한계가 너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 정리하기 시작한 나의 Job多한 일상! 

이토록 나 자신에게 냉정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나에서 벗어나 자아와 에고, 기대와 현실, 노력과 결과, 능력과 시간을

글로 도표로 마인드 맵으로 정리했다. 

무엇을 간직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마치 옷정리를 하듯이 

마음을 솎아내기 시작했다. 

허영과 허세와 욕심과 욕망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리했다. 

재활용도 안 되는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꼭꼭 묶어 버렸다. 


빈틈없던 일상에 빈틈을 듬뿍 내주었다. 

버려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듯이 포기해야 또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포기는 실패도 좌절도 아닌 존재를 가볍게 만들기 위한 덜어내기라는 걸 

10년 만에 다시 깨닫는다. 

그래,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 10년 지나고

11년 차인데 변할 때도 되었지....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건 정말 옛말이다. 

시대 보정이 필요한 문구다. 15분 영상도 지루해지는 마당에 

1분 영상에서 30초 영상까지 우리 두뇌를 자극하는데 

10년이라니.... 

이런 초스피드 생활 시간대에서 10년이 지나서야 

뭔가 깨닫고 일상을 바꾸는 나는 한 없는 느림보 달팽이지만 

그래, 변화를 주려는 이 노력이 얼마나 가상하냐!


내 영혼을 독하고 냉정한 자아비판으로 털털 털어놓고

마지막으로 칭찬 한 스푼 넣어준다. 

쫄 린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때, 칭찬 한 스푼 더 넣어줄까? 


독일에서 서울로 오기 전에 난 운동을 참으로 열심히 했다. 

숲 속의 조깅과 알프스 등산은 물론 동네 헬스장 단골이었는데 

서울에 온 이후로 운동과 담을 쌓고 있었다. 

스트레칭 5분이 한 달의 운동량인 듯했는데... 


지금 살고 있는 공동주택 지하 1층에 헬스장이 있다. 

거기 드디어 길을 텄다.  정말 칭찬할 만하다. 

러닝 머신을 하고 가벼운 무게로 근력 운동을 하고 

거울 속에 나를 바라봤다. 

어쩌면 처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건지도 모르겠다. 

중력을 거스르는 일로 땀범벅이 되어버린 민낯의 내가 

더는 낯설지가 않다. 내 얼굴이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내 몸이 이런 모습이었던가? 


결과와 성과로 늘 외부로 향했던 에너지가 나의 존재로 향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이 더는 불편하지 않다. 

소유를 향한 욕심에 즐길 줄 몰랐던 내 존재가 반갑다.


옷을 버리고 신발을 버리고 가방을 버리고 

살림을 버리고 가구를 버리고 

마침내 내 욕심과 헛된 희망을 버리고 나니 

이토록 가볍다. 

소유물을 되찾고 또 소유물을 버리는 속에서 

내 존재의 저울이 균형을 찾는다. 

'이너 피스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삶의 균형은 존재도 소유도 아닌 이 두 가지의 오묘한 조합이라는 거.... 

심플 라이프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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