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무가치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이런 나의 생각에 다른 한 생각이 들어온다. 인간은 존재만으로도 가치를 갖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함부로 폄하할 수 없고, 그 현상들과 본질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쓸데없는 생각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걸까.
나를 무가치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원인은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사람들이 매일매일의 존재의 부정당한 감정을 해소하고, 서로의 관계성으로 충분히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 힘을, 혼삶은 자신의 현실에서 풀어내지 못하고 매일매일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반적이라고 하는 가정이 있는 삶과 다른 혼삶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해 공유할 수 없는 대화부재로 정서적 불안정으로 인해 갖는 감정적 고립감이다. 그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도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너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거나 또 서로 감정이 부딪혀 너무 멀리 형식적으로 지내게 되거나 이런 불협화음이 정서적 친밀관계의 부재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나는 나를 진단하게 된다.
또 한 가지는 계속 올라가고 있는 실적에 상대적으로 멈추어 있는 나의 그래프 때문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이젠 거의 해결이 된 듯하다. 순간적인 단편적인 긴장해야 할 정도이지 심각한 고민거리는 이제 아닌 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인간은 특별한 관계를 원한다. 70억 인구 중의 한 명이 아니라 고유명사이고 싶어 한다. 그것이 또한 정서적 안정감을 형성시키며 삶을 발전시키는 기반을 형성한다. 특별한 관계가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인간자체가 홀로 불안정하며 감정의 충족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핍을 문제로 진단했으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고민을 해 나가고 있다. 정서적 교감을 위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 문제인가. 인간이 스스로 혈연관계보다 더 가까운 나와 동등하게 대우해 줄 존재를 만나는 작업이니 말이다.
더더욱 어려운 문제는 인간관계는 정말 중요하지만 집중해서는 안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감정은 인위적 일수 없으며 시간을 통한 자연스러운 검정의 흐름을 통하여 관계가 형성된다. 조급하게 목적이나 목표를 정해서는 안되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아주 빨리 진행될 수도 있는 알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나의 성급한 성향은 이 부분을 간과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신중하여 인연을 스쳐 보내기도 하는데, 너무 적극적이어서 혹은 단 한 명만이라는 생각으로 사전에많은 만남으로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를 좌충우돌을 염두에 두지 않아서 실망하고는 했다.
지금 만나는 사람이 인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두 가지의 가능성을 염두해야 하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또한 쉽게 판단 하지도 결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바로 이점이 인간관계의 어려움이다. 나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으며 상대의 의지만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서로의 합의와 합일이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다.
한 두 사람을 만나고 쉽게 절망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5년 이전에 모두 그랬던 것 같다.
사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은 인간을 상처투성이로 만들곤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했었던 시간이 있었지만 사회생활에서조차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위험신호를 감지했다.
또한 아무리 쉽게 만나는 문화가 많아도 ( 사실 이것 때문에 연애에 대하여 마음을 닫고 살았다 ) 나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나에게 필요하다. 또한 타인은 남이라는 전제에서 바라봐야 한다. 너무나 어려워도 아예 실천을 하지 않으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더 큰 후회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적인 작업은 행운이 따르지 않는 한 너무나 어렵고 어려운 사안인데, 너무 순진하고 쉽게 내 생각대로 될 거라는 무지가 나에게 있었다고 돌아본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인연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큰 산을 오르기 전에 다짐처럼 각오가 되어야 한다.
또한 나의 50대 연령대에서 소울메이트를 찾기란 더욱 확률은 낮아진다. 그래서 포기했지만 이제는 인연을 찾는 과정의 어려움보다 혼자 살아가는 어려움이 더 커진 상황이 되었고, 아마도 이제 나는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주변에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를 넘기고 인연을 만나지 못해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한두 사람쯤은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비롯한 그분들에게 공감과 동감과 용기를 전하고 싶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는 중요하지 않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범주안에 행복추구권을 실행하고 있으며 살아 존재하는 데까지 행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삶의 의무를 부여받았다. 누군가의 시선이나 외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일지라도 책임지는 존재는 바로 나이므로 또한 권리이자 자신에 대한 의무이기도 하다.
업무시간에 잠깐 짬이 나서 교회에 가 기도를 하였다.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삶 속에서 수많이 몰려오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나를 바른 삶으로 가져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상황을 넘어 초자연적으로 능력을 가진 신에게, 무너졌던 삶을 10년에 걸쳐서 회복시키신 것처럼 지금의 불가능할 것 같은 상황에서도 능력 하실 수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의 동역자, 배우자일 수도 있는 기도제목은 1시간 반동 안에 구체화되었다. 50%는 통하는 사람, 나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는 절제력를 가진 사람으로 매듭 지어졌다. 나이와, 키나 재산은 모두 상관없기로 했다. 우리가 친구를 만날 때 처럼 그외의 것들은 관계에 있어 그닥 중요하지 않는 것들이라 생각되며,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평범하고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려운 일인 만큼 많은 과정이 필요할 것을 예측하고 백 명을 만나면 한 명은 만날 것이라는 마인드로 가기로 하였다.
현재만 그리고 현실만 보던 우울한 마음에 희망을 넣으니 다시 작게 힘이 나타났다. 희망이라는 기대는 오랜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을 갖는다. 혼삶의 고독으로 혹시 힘든 이들에게 희망은 가장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되어 준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다른 단계의 문제가 또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