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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일진 Sep 10. 2024

4화: 소리 없는 밤

어둠속의 목소리


“방금 뭐였지?”     


서현을 부르는 소리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무언가 급하게 지나간 흔적만 느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은 언제나 서현에게 가장 길게 느껴졌다. 어둠이 깔리면 세상은 마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그 안에서 그녀는 더욱더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었지만, 그 빛은 서현의 마음속까지 닿지 못했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그녀는 어딘가 더 깊은 어둠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서현은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방 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몸이 쉬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계속 돌아가고 있었겠지만,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은 멀어져 있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더 큰 공허함이 그녀를 삼킬 듯 다가왔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거리의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어냈다. 그 빛은 세상을 비추고 있었지만, 서현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빛조차 그녀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세상과 단절된 존재인 것처럼, 그 빛은 서현을 비껴나갔다. 어둠 속에 스스로를 숨긴 채,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누가 알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서현은 더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어쩌면 아무도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장 동료들도, 친구들도, 엄마조차도. 그녀는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하고, 그녀도 그들을 보지 못한 채 그저 어두운 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방 안의 시계는 계속해서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히 흘러가고 있었지만, 서현은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기분이었다. 시간이란 게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오늘과 내일의 차이는 없었다. 하루는 그저 또 다른 하루로 이어지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만 남았다.     


불현듯,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밤의 공기가 서늘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그것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로등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고, 거리의 형체들은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 빛조차도 그녀를 감싸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     


이 고요한 밤, 오로지 그녀만이 존재하는 이 순간에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분명히 살아있었지만, 그 세계는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서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상은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녀도 더 이상 세상에 기대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까 들었던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걸 원해?”


서현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몇 번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너 누구야?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서현아. 묻는 말에 대답해. 네가 정말 원하는 게 그거야?”


서현이 말을 잇지 못하자 소녀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잘 들어 서현아. 지금 너에게 시간이 없어. 네가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네가 그답을 찾아야 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 어디선가 자주본 앳된 얼굴의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가만히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서현은 자신이 마치 투명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점점 더 얇아져서 결국에는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 밤의 고요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있어도, 없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까 들은 소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잘못 본 거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어. 뭐였을까? 그 말은.... 내게 시간이 없다고? 내가 그답을 찾아야 한다는 건 또 뭘까?”  

   

침대에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녀의 마음속도 그와 같았다. 이 밤이 지나면, 또다시 무감각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또 다른 밤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깊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서현은 자신이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에 잠겼다. 이 어둠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잠을 청하려 했지만, 여전히 가슴속 어딘가에는 무거운 무언가가 얹힌 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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