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언제나 서현에게 가장 길게 느껴졌다. 어둠이 깔리면 세상은 마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고요해지고, 그 안에서 그녀는 더욱더 자신만의 고립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리의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비추었지만, 그 빛은 서현의 마음속까지 닿지 못했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그녀는 어딘가 더 깊은 어둠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서현은 침대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방 안,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침대에 몸을 뉘었지만, 몸이 쉬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계속 돌아가고 있었겠지만, 그 모든 것에서 자신은 멀어져 있는 듯했다. 눈을 감으면 더 큰 공허함이 그녀를 삼킬 듯 다가왔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가로등 불빛이 거리의 형체를 흐릿하게 만들어냈다. 그 빛은 세상을 비추고 있었지만, 서현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 빛조차 그녀의 세계에 들어오지 못했다. 마치 자신이 세상과 단절된 존재인 것처럼, 그 빛은 서현을 비껴나갔다. 어둠 속에 스스로를 숨긴 채,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 있는 기분이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누가 알까.‘
그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서현은 더 깊은 외로움을 느꼈다. 어쩌면 아무도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직장 동료들도, 친구들도, 엄마조차도. 그녀는 그저 지나가는 그림자처럼 존재할 뿐이었다. 누구도 그녀를 보지 못하고, 그녀도 그들을 보지 못한 채 그저 어두운 밤을 견뎌내고 있었다.
방 안의 시계는 계속해서 째깍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분명히 흘러가고 있었지만, 서현은 그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기분이었다. 시간이란 게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녀에게 오늘과 내일의 차이는 없었다. 하루는 그저 또 다른 하루로 이어지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느낌만 남았다.
불현듯, 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밤의 공기가 서늘하게 방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그것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가로등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고, 거리의 형체들은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그 빛조차도 그녀를 감싸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멀리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일 뿐이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 싶어.....’
이 고요한 밤, 오로지 그녀만이 존재하는 이 순간에 그녀를 둘러싼 세상은 분명히 살아있었지만, 그 세계는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서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상은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그녀도 더 이상 세상에 기대하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아까 들었던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걸 원해?”
서현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몇 번을 두리번거렸다.
그녀가 잘못들은 것이 아니었다.
“너 누구야? 어떻게 여기 들어왔어? 내 이름은 어떻게 안 거야?”
“서현아. 묻는 말에 대답해. 네가 정말 원하는 게 그거야?”
서현이 말을 잇지 못하자 소녀가 대화를 이어나갔다.
“잘 들어 서현아. 지금 너에게 시간이 없어. 네가 생각하고 바라는 대로 흘러가게 되었다고. 너만이 해결할 수 있어. 네가 그답을 찾아야 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얼굴, 어디선가 자주본 앳된 얼굴의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잠깐 정신을 잃었던 그녀는 창가에 기대어 가만히 서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에서, 서현은 자신이 마치 투명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점점 더 얇아져서 결국에는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 밤의 고요함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있어도, 없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아까 들은 소녀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가 잘못 본 거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어. 뭐였을까? 그 말은.... 내게 시간이 없다고? 내가 그답을 찾아야 한다는 건 또 뭘까?”
침대에 다시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녀의 마음속도 그와 같았다. 이 밤이 지나면, 또다시 무감각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또 다른 밤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깊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서현은 자신이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기분에 잠겼다. 이 어둠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무엇을 기다려야 할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천천히 숨을 내쉬며 잠을 청하려 했지만, 여전히 가슴속 어딘가에는 무거운 무언가가 얹힌 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