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의 몸 이야기]
첫 아이 임신 후 태명을 고민할 때 남편이 "고래는 어때? 자기가 고래를 좋아하잖아"라고 제안했다. 버킷리스트에 고래 워칭 투어가 있을 정도로 고래를 좋아하는 나는 그 태명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피고임 때문에 위험하다는 말에 비전이 보이지 않던 회사를 그만두자 이제 정말 배 속의 고래에게만 집중하면 되었다. 임신의 기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입덧이 시작됐다.
본래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배가 고파 밥부터 찾던 사람인데 입덧이 시작되자 쌀밥을 먹을 수 없게 됐다. 군침이 돌고 푸근하던 밥 짓는 냄새가 세상에서 가장 역한 냄새로 변했다. 쌀밥을 입에 넣는 건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밖에 나가면 음식 냄새들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집안에만 있게 되었다. 남편에게는 회사에서 삼시 세 끼를 다 해결하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느 날 퇴근한 그가 무심코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침대에 누워있었는데도 그 냄새가 느껴져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했다. 쌀밥을 먹을 수 없으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새 생명을 키워야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향이 강하지 않은 치아바타 같은 발효빵 조금, 수제비 몇 점 먹는 게 다였다. 밀가루라도 먹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살집이 있는 상태에서 임신을 했는데 혹독한 입덧으로 8kg이 빠졌다. 다행히 엄마는 못 먹고 말라가도 아이에게는 영양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엄마 몸에서 알아서 빼간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고래는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컸다. 안정기에 접어들고 입덧도 덜해지자 산책도 나가고 활동을 시작했다. 회사에만 매달려 있던 사람이 하루종일 집에 있으려니 무료했다. 마침 어릴 때부터 친구 두 명이 동시에 첫 아이를 가졌다. 산모교실이나 베이비페어를 함께 갔다. 출산 준비도 함께 하고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니 즐거웠다. 혼자서도 달력이 빼곡할 정도로 산모교실, 모유수유 강의 등을 알아보고 찾아다녔다. 출산 관련 책도 잔뜩 사서 쌓아놓고 읽었다.
출산 병원을 정할 시점이 되었다. 세 군데 병원과 조산원에 상담을 다녀온 뒤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으로 결정했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출산 방법이다. 흔히 출산에 필수라고 알려진 '무통 주사'는 척추 쪽으로 바늘을 꽂아서 경막 외 마취를 하는 방법이다. 허리 디스크와 만성 척추 질환으로 오래 시달렸기에 경막 외 마취가 영 께름칙하게 느껴졌다. 마침 조산원에서 출산한 지인이 있어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자연주의 출산 관련 책도 읽고 인터넷 카페에도 가입해서 자료 조사를 했다. 찾아볼수록 '무통' 없이 아이를 만나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와 함께 호흡하며 '자연적인' 방법으로 출산하는 게 기대되고 설렜다. 산부인과에서 일반적인 방법으로 출산을 경험한 친구들은 진통이 얼마나 아픈지 몰라서 저런다며 혀를 찼지만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려면 엄마가 미리 공부하고 준비해야 할 게 많았다. 전문 병원에서 남편과 함께 교육도 들어야 했고 호흡 연습도 해야 했다. 입덧 때문에 오랫동안 활동량이 적었기에 매일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임신부 필라테스, 산전 요가는 물론이고 걷기도 열심히 했다. 막달에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걸었고 예정일에는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임신 후기로 갈수록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느낌이었다.
담당 조산사가 배정되어 미팅을 했다. 자연주의 출산 병원에서는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와 더불어 임신 기간부터 진통, 출산까지 조산사가 함께 한다. 의사는 산모와 태아의 건강 상태를 검진하고 조언한다면, 조산사는 어떻게 아이를 맞이할지 출산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돕는다. 고래와 나를 도와줄 조산사는 우리 엄마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분이어서 처음 만날 때부터 편안했다. 남편과 상의해서 출산 계획서를 미리 작성하고 조산사와도 점검했다. 출산 시 어떤 입원실을 쓸지, 어디에서 어떻게 진통하길 원하는지, 욕조에 들어가고 싶은지 아닌지, 어떤 음악을 듣고 싶은지, 조명은 어느 정도가 좋을지, 출산 시 방에 들어오는 인원은 몇 명이길 바라는지 등등 정말 세세한 것까지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물론 출산 시에 가장 중요한 건 아이와 산모의 안전이기에 출산 계획을 상세히 한다고 다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응급 상황이 생긴다면 당연히 수술이라든지 의료적 조치가 취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고, 비상시에 대비하기 위해 조산원이 아닌 전문 병원을 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이라는 내 몸에서 벌어지는 어쩌면 가장 크고 무거운 일이 나의 성향과 선호에 따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외국에서는 자연주의 출산 전문 병원이 아니더라도 산모의 의견을 반영하는 출산이 드문 일이 아니라고 한다.
출산 방식을 고민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어떤 출산을 원하지? 고래를 어떻게 만나고 싶지?' 질문하는 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질문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진통보다 경막 외 마취로 내 몸에 들어올 약물이 더 두려운 사람이구나. 나는 외향형이지만 출산이라는, 아이와 나에게만 집중해야 할 순간에는 최소한의 인원이 함께 하길 바라는 사람이구나. 나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30년 넘게 하지 못했던 '매일 운동하기'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나는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예민한 사람이구나. 많은 걸 감각하고 판단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내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있는 사람이구나. 고래와의 만남을 그리면서 나는 오히려 나에 대해 알아갔다.
예정일을 훌쩍 넘긴 어느 수요일 새벽, 전날 거하게 먹은 저녁을 다 토하느라 잠에서 깼다. 곧이어 진통이 시작됐다. 내가 변기를 잡고 있는 사이 남편이 조산사에게 연락했고 진통 간격이 잦아지면 병원으로 출발하라는 말을 들었다. 고양이들은 엄마가 아픈 걸 바로 알아차리고 내 옆으로 와서 맹렬하게 골골송을 불러댔다. 초산은 진행이 늦다는데 이러다가 집에서 낳는 게 아닐까 두려울 만큼 아팠고 옷도 못 갈아입은 채 잠옷에 겉옷만 걸친 채 차를 탔다. 하필 출근 시간이었다. 조수석에서 손잡이를 잡고 진통을 하다가 쓰러져 자기를 반복했다.
아침 9시 20분에 병원에 도착했고 10시 8분에 고래가 세상에 나왔다. 출산 굴욕 3종이라는 관장, 제모, 내진 중 앞의 두 가지는 할 시간도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태동 검사를 했고 아이 심박수를 확인한 후 조산사가 첫 내진을 했는데 "고래 엄마, 너무 잘 참았어요. 10cm 다 열렸어요. 힘주세요."라고 말했다. 맹장 수술도 제 발로 걸어가서 받았던 나는 첫 출산의 진통도 '무통 주사' 없이, 소리도 지르지 않고 견뎠다. 다른 때는 예민하면서 통증에는 꽤 둔감하다는 걸 재차 확인했다.
고래는 태명처럼 꽤 큰 아이였고, 세상에 나올 때도 헤엄치듯 한 번에 후루룩 밀고 나왔다. 평화롭게 세상에 나온 고래는 울지 않았다. 내 배 위에서 가만히 세상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잠을 못 잔 상태였지만 '자연 진통제'라는 호르몬 옥시토신의 효과는 대단했다. 전혀 피곤하지 않고 쌩쌩해서 직접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고 자는 고래 얼굴을 한참 들여다봤다.
고래와의 만남은 내게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가져다주었다. 고약한 입덧에도 무사히 막달까지 아이를 배 속에서 키웠고, 내가 원하는 출산 방식을 직접 선택했고, 바라던 방식대로 평화롭게 아이를 낳았다.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그걸 해낸 게 나라니. 산후엔 호르몬이 널뛰어서 자꾸 눈물이 나고, 회음부가 찢어져 불편하고, 진통보다 더 아픈 모유수유의 고통이 곧 닥쳐왔지만 정신없는 신생아 육아 중에도 내 안 아주 깊은 곳에 형언할 수 없는 자부심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