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김금희 작가의 ‘너무 한낮의 연애’는 2016년 제7회 젊은 작가상의 대상작이다.
김금희, 「너무 한낮의 연애」 , 문학동네, 2016
소설은 영업팀장에서 시설관리팀 직원으로 밀려나 16년 전 어학원 수업을 같이 듣는 후배와 함께 다녔던 종로의 맥도널드를 찾아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회사에서의 좌천에 분노와 절망을 메뉴에서 사라진 ‘피시 버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했던 필용은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으러 다니던 중 “ 나무는 ‘ㅋㅋㅋ’하고 웃지 않는다”라는 연극 제목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 연극을 통해 16년 전 맥도널드에서 매일 허세엔 가득한 자신의 허왕된 이야기를 들어주던 양희가 자신에게 뜬금없이 “나 선배 사랑하는데” 사랑을 고백하던 날과 매일 그것을 확인받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냐고 묻고 "사랑하죠, 오늘도"라는 대답을 듣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날부터 속으로 경멸했던 무기력하고 한심한 양희에게 매일 자신을 사랑하는지 묻게 되면서 양희에게 점점 매달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묘한 감정에 빠졌던 필용은 어느 날 갑자기 “아, 선배 나 안 해요. 사랑”이라는 양희 말에 애를 태우게 된다. 필용의 속사포처럼 험악한 말을 듣고 사라진 양희를 찾아 문산까지 갔다 다오는 길, 사랑하는 감정이 사라진 양희를 이해하게 된다. 마침내 그리고 양희의 연극을 보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종로로 달려갔던 필용은 무대 위에서 전신 타이츠를 입은 무대 위의 양희와 마주한 뒤, 한낮의 길에서 자신의 16년 전의 선택과 현실에 대해 생각한다.
이 작품은 같은 제목으로 최강희와 고준이 주연한 2018년 KBS 드라마 스페셜로 방영되었다.
드라마는 소설에서와 달리 주인공 필용(고준)의 인사발령날 필용과 양희(최강희)가 지하철에서 엇갈리는 장면, 육교에서 부딪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소설에서는 모든 이야기가 필용의 이야기, 필용의 느낌과 감정에 중점을 맞추며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소설이 필용 중심의 이야기라면 드라마는 필용과 양희의 이야기를 절반씩 보여준다. 그것은 드라마가 소설에 나오지 않는 양희의 이야기에 상상을 더해 글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설에서의 필용의 허왕되고 혈기 왕성함이 약화된 듯 다가온 반면에 무기력하고 말이 없는 양희는 소설 속에서보다 좀 더 발랄하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인물로 보였다. 그래서 소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시작된 드라마이지만 드라마 특성 때문인지 드라마 ‘너무 한낮의 연애’는 주요 맥락은 같지만 분위기가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동안 소설에서 보았던 글귀를 움직이는 화면으로 보고 글로 읽었던 대사를 목소리를 발견하는 것은 또 다른 ‘너무 한낮의 연애’를 읽는 기분이었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심한 막말 후 양희를 찾아간 필용에게 양희는 자신의 대본 제목과 같은 이 말을 한다. 아마도 양희는 가난으로 인해 또는 남들에게 무력해 보이는 자신으로 인해 부끄러움이 느껴질 때면 나무 앞에 섰었던 모양이다. 나도 가끔 어쩌면 자주 어떠한 비난과 평가도 없이 바람에 잎을 나부끼며 서 있는 나무 앞에 서서 위로받고 싶은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도 어떤 것은 아주 없음이 되는 게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남았다
우리는 가끔 없다는 것과 있지 않다는 것이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다 보면 없어지는 것과 있지 않은 것이 다를 때도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때가 있다. 나는 그 어렴풋한 느낌을 문장 하나로 표현한 이 부분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