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한국 책 읽기
제 7회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세 편의 소설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온 인생과 자신의 상황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사는지를 보여주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나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기준영,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 , 문학동네, 2016
스물 다섯 여대생 H를 향한 자신의 마음과 현실을 저울질하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관리된 외모와 안정된 경제력을 가진 오십대 초반의 싱글남의 이야기다. 자신보다 늙어보이는 마흔 후반의 싱싱한 젊은 H에게 ‘양선생님’이라 불리는 그는 관계에 대한 얽매임을 두려워하며 적당히 무심한 태도로 긋고 자르며 자신의 통제 아래 영위되는 삶을 지향한다.
생이 이대로 괜찮다고 여겨지는 날들에는 가끔 좋았던 일들도 떠올랐다. 그러니까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 비슷한 기분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H에게 들려줄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준비하는 장면에 다다를 때까지 그는 자신의 감정과 삶의 울타리가 허물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에게 예외적인 상황은 그 자체로 어떤 의미 이상이었다. 까닭은 알 수 없는 일들은 늘 그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아마도 우리가 두껍게 울타리를 친 울타리 안에서 만족하며 살려 노력할지라도 누구든 숨겨진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순간을 문 안에 있던 양선생은 만났다.
정용준, 「선릉 산책」, 문학동네, 2016
주인공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헤드기어를 쓴 자폐가 있는 한두운이라는 청년을 돌보는 대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에게도 ‘자아’라고 하는 것이 있을까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두운이라는 청년과 함께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는 인적드문 곳을 찾아 걸어다니던 주인공이 물었다.
나는 남의 개에게 욕을 할 수도, 발로 찰 수도 없어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그는 뒷걸음을 치며 내 뒤로 숨었다. 그가 느끼는 두려움이 어깨와 팔에 흡수되듯 고스란히 전해졌다.
말을 안 하는데 알 수가 있나.
오늘 만난 한두운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나. 정말 권투를 배운 걸까?.
결국 불미스런 사건으로 자애를 한 한두운이 화가난 이모와 함께 사라진 뒤 주인공은 여전히 자신과 하루를 걷고 또 걸었던 자폐 청년에 대해 궁금해한다. 소설을 읽고 나는 왠지 헤드기어가 빨간색일거라 생각했다. 아마도 헤드기어를 벗겼을 때 한두운의 얼굴이 땀띠와 더위로 빨갰다는 묘사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임시교사를 하면서 만났던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떠올랐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그래서 내가 예측하거나 가늠하기 어려운 성향이나 행동을 보이는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주인공과 같이 ‘그들에게도 자아가 있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선릉산책이라는 이야기를 읽는 동안 소설 속 주인공처럼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해 무지했던 나는 겉모습이나 드러나는 행동과 상관없이 그들에게는 자아가 있고 그들의 그런 행동은 그 자아가 보내는 어떤 신호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필요했던 시간들이 기억났다.
장강명, 「알바생 자르기」, 문학동네, 2016
은영은 다음날 오후에 회의실로 여자아이를 불렀다. ‘조직생활을 하려면 붙임성이 있어야한다’는 충고에 여자아이는 눈이 붉어졌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에서 ‘여자아이’나 ‘아가씨’로 불리는 혜미가 오랜 시절 나의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시절 내내 교수님이나 선배들에게 붙임성있게 대하며 귀여움을 받고 그와 이어진 어떤 특혜를 누리는 친구들을 볼 때면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샘이났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줄곧 그 붙임성이라는 사회적, 관계적 기술을 가진 동료들이 어쩐지 나보다 쉽게 여러 가지 기회와 이익 얻는 삶의 요령에 의연한 척 눈쌀을 찌뿌리면서도 그들의 그 본능적 재능이 은근히 부러웠다.
여자 아이를 자르기까지 은영은 여느 회사의 과장들과는 다르게 나름 알바생의 처지에 대해 고심하고 배려하며 좋은 쪽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이야기를 읽는 내내 알바생이 어쩐지 너무 은영의 시각으로만 평가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저자가 초고에는 없었다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넣은 것이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정말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어찌해야할지 몰라 무심한척하며 어정쩡하게 행동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 눈에는 성의없고 퉁명스럽거나 뚱하게 보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소설에서 잘린 알바생이 오래전 나의 모습 같아서, 여전히 그렇게 밖에 살 수 없는 어떤 이들이 있을 것 같아서 책을 덮고도 한동안 마음이 헛헛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