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떠나 시골살이를 하러 가 보자
“둘이 사는데 입에 풀칠은 하겠지!”그게 문경으로 내려온 이유였다.
결혼을 하고 도시에서 먹고사는 게 녹록잖았다. 나는 한 시간 반 거리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며 다녔고, 남편은 새벽에 나가 자정까지 쉬는 날 없이 장사를 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이 모이지도 않았다. 둘 다 사치스럽게 살지 않았는데 그것 또한 신기했다. 애초에 없이 시작해서 느는 속도가 더뎠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모으는 것 외에 재산이라는 걸 어떻게 늘리는지 잘 모르는 것도 같았다.
그런 삶에 둘 다 지쳐 있었다.
이렇게 살 바엔 시골에 가서 농사라도 짓고 사는 게 어떠냐고 내가 먼저 물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하고 있는 장사는 동업이라 위태로운 상태였고, 꽤 오래 장사를 해서 일을 그만두고 나면, 그 나이 이에는 더 이상 새로운 직장에 들어갈 수도 새로 사업을 차릴 자본도 없었다. 공장에 들어가거나, 택배 같은 배송일을 해야 했다. 그렇게 까지 하면서 도시에서의 삶을 유지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둘 다 꼭 도시에서 살아야 한다거나, 도시에 집을 사는 게 인생의 목표 라거나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어디에서든 먹고사는 일은 마찬가지고, 힘든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그럴 바엔 마음이 편한 시골로 가자는 게 내 생각이었고, 남편도 동의했다. 그렇게 지금 남편의 고향인 문경에 있다.
분명 문경에 처음 내려왔을 때 불편했던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동네엔 그 흔해 빠진 편의점 하나 없고, 음식물 수거통이 동네에 없어서 차에 싣고 읍내까지 나가서 버려야 한다. 사람들의 말투가 조금은 퉁명스럽고 폐쇄적이라는 것, 또 외지인을 보는 눈이 반가워 보이면서도 안 그렇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시골에서 먹고산다는 건, 도시보다 좀 여유롭기도, 혹은 더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직 우리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 농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없다. 남편은 시댁 농사일을 돕는 틈틈이 소개나 부탁으로 일용직을 나가 돈을 벌어 왔고,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외부로 수업을 나가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번다. 도시에서 둘이 벌 때에 비하면 적은 돈이지만 둘이 사는 데는 충분하다.
들어오는 돈도 적지만, 나가는 돈도 적다. 봄에 한 개에 몇 백 원씩 하는 모종을 심어서 물만 잘 주면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주렁주렁 여러 가지 채소가 달리고, 동네에 있는 이웃들이 신선한 제철 채소들을 나누어 준다. 도시보다 물가가 좀 싸기도, 비싸기도 하지만, 먹고사는 데 쓰는 돈은 비슷하다. 어쩌면 무언가 자극하는 것들이 적고, 너무 없어서 덜 쓰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작년 초에 문경에 내려온 청년의 입장으로 인터뷰를 하며 여러가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했다. 문경에 내려와서 뭐가 불편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딱히 없다고 대답했고 인터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지난날들이 생각나면서 웃음이 나왔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이 문경에 내려온 것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이었는데, 되는대로 입에 풀칠은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입에 풀칠은 하면 됐지, 그러려고 내려왔으니까 말이다.
2020 여름 성주봉 위로 뜬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