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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Mar 18. 2022

하마터면, 집이 없어 귀농을 못할 뻔했다.

문경에서 빈집 찾아 삼만리




마원 1리 동네의 길 끝에 있는 작은 옛날 집, 이 집을 찾으려고 그렇게도 애를 썼다.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문경으로 내려갈 예정은 이전부터 막연하게 있었다. 그래서 서울에서 귀농교육도 듣고, 이것저것 알아보기도 했었지만 예정보다 서둘러 내려오게 되면서 제일 처음으로 난관에 부딪혔던 건 ‘집’이었다.


 수원에서 살던 아파트는 지은 지 꽤 오래되어서 단지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이가 있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조용했고, 우리도 둘이 살면서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조용히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웃을 신경 쓰고 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혹시나 위층이 이사 가고 새로운 사람이 오면 내가 피해를 입을까, 아니면 내가 남에게 피해를 줄까 걱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이 시골까지 와서 층간소음 때문에 이웃을 신경 쓰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그렇지만 부동산에서도, 문경에 아는 지인들도 왜 빌라를 들어가지 않고 손도 많이 가고 불편한 주택을 고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아마도 층층이 집을 쌓고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겪어보지 못했고, 겉으로 보기엔 좀 더 번듯한 빌라나 아파트가 낡은 주택보다 좋아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줄어들고 있어서 시골엔 빈집이 넘쳐 난다기에 당연히 우리 둘이 살 집 정도야 쉽게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게 아주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직방’이나 ‘다방’ 같은 부동산 앱들은 시골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부동산끼리도 서로 공유라는 게 전혀 되지 않았고, 그 보다 더 큰 일은 살만한 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를 타고 읍내와 주변 동네를 돌면서 빈집을 찾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은 집을 보고, 등기부등본을 떼고 집주인을 찾고, 수소문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알음알음으로 이 집을 구했다. 이 집 역시 여느 시골 빈 집이 그렇듯 자식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남아 계시다 돌아가시고 빈 채로 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읍내 근처의 마을 끝에 있는,  옛날 흙집을 수리한 작고 낡은 집이었다.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사람 키만 한 이름모를 풀들이 마른채로 마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 수풀 사이로 길고양이들이 인기척을 느끼고 도망가기 바빴다. 작은 마당이 있고, 집 주변으로 돌담이 빙 두르고 있는 아늑해 보이는 집이었다. 집 안을 들어서니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을 법한 큰 꽃무늬 벽지와, 아직 남아있는 살림에서 묻어나는 집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집은 꽤 마음에 들었다.



 이사를 들어오면서 대청소가 시작됐다. 묵은 때와, 냄새와, 향기, 여러 가지의 흔적을 지워내는 일은 쉽진 않았다. 꽤 독한 세제를 사용해서 구석구석을 닦아내고, 털어내고, 이전에 살던 누군가의 흔적을 지워냈다. 그러고 나서 도배를 하고, 장판을 바꾸고, 살림을 채워서 우리의 공간으로 바꾸는 일로 분주했다. 원래 우리가 살던 살림을 넣으니 또 전혀 다른 느낌의 집이 되어있었다. 겉은 낡은 집이었지만 집 안에 들어오면 꽤 그럴듯했다. 그렇게 이 집에 살게 됐고 이 년이 지났다.



 마당에 나가 별을 보고, 일어나서 창 밖의 날씨를 확인하고 고양이들과 아침 인사를 하고, 계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지냈다. 비가 올 때는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바람을 느끼고 계절의 냄새를 맡는다. 조금  만 부지런하면 철마다 집 근처에서 머위나, 두릅, 가죽나물 같은 것들을 얻어 낼 수 있었고, 마당에 있는 호두를 따고, 먹고, 이웃과 나누었다. 철철이 피어나는 꽃을 보느라 꽃집이 없어도 꽃은 얼마든지 지천에 널려있었다. 도시에서의 편리함과 맞바꾼 것들이었다.


 이렇게 이 집에서의 두 번의 계절들을 지났다. 작년보다는 조금 여유롭고, 좀 더 능숙하게 보내는 참이다. 오서길에서 몇 번의 계절을 더 보낼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그동안 익숙해진 것들을, 또 새로운 것들을 찾아 살아가 보려고 한다. 두 번째 맞는 계절도 매일이 신기하고 새롭고, 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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