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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Mar 31. 2022

불편하지만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

도시의 편리함과 바꾼 것들




 4월 초에 이사를 왔을 때 문경은 아직 꽤나 쌀쌀한 날씨였다. 그래서 이사 오고 제일 먼저 한 건 보일러를 수리하고 기름을 채운 일이었다. 한동안 잊고 있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은 주유소에 전화해서 기름차를 불러야 한다는 걸. 어릴 적 보일러에 기름을 넣던 날의 기억이 살아났다. 다행히도 고장 난 줄 알았던 97년 산 귀뚜라미 보일러는 수리를 했더니 잘만 돌아갔다.


가스도 마찬가지였다. 떨어지면 가스 집에 전화해서 주문을 하고, 그럼 아저씨가 스케줄에 맞춰 가스통을 가져다주시는데, 운이 좋으면 바로 오시기도 하고, 배달이 밀려 있으면 다음날 오기도 했다. 그럼 하루는 핑계를 대고 외식을 하기도 아님 급한 대로 휴대용 버너를 이용하기도 했다.



보일러 기름이나 가스는 3-4달에 한번 정도 있는 일이라 크게 불편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도시의 익숙했던 편리함 들은 처음에 꽤나 불편했다. 배달앱 같은 건 쓸모가 없는 것이었고, 로켓 배송이나 새벽 배송 같은 것들도 서비스 불가 지역이었다. 돈을 내도 이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음식들이나 지천에 널려있던 프랜차이즈 음식점들, 수원에는 동네에 2-3개씩 있었던 ‘올리브영’이나 ‘다이소’ 같은 가게들은 차를 타고 30분 이상 나가야 했다. 당연히 우리 동네엔 편의점도 작은 구멍가게도 없다. 무언가를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됐다.



사는 것도 어려웠지만, 버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쓰레기는 마을 입구에 버리는 곳이 있어서 들고 걸어가기도, 차에 한 번에 싣고 가서 버리면 됐는데 문제는 음식 쓰레기였다. 마을에 음식물 쓰레기통이 없었다. 시에 문의해봤는데 시골지역은 의무설치구역이 아니라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와 통화했던 공무원은 주택이면 마당에 묻으시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텃밭이 있긴 헀지만, 고양이들이 다니는 데다 여름엔 파리도 꼬여서 마당에 묻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길게 말하고 싶지 않아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국 지금까지 음식물 쓰레기는 차에 태워서 읍내까지 나와서 버리고 있다.



쓰레기는 왜 그렇게 많이 생기는지 금세 쌓였다. 주말에 손님이라도 한번 왔다 가면 쓰레기가 한가득 나왔다. 분명 도시에서 살 때 쓰레기가 더 많이 나왔던 것 같은데, 시골에 이사 오고 나서는 쓰레기가 쌓이는 걸 볼 때마다 스트레스와 함께 왠지 모를 죄책감 같은 게 들었다. 차에 쓰레기를 싣고 버리러 나갈 때마다 쓰레기를 모시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사는 것도 버리는 것도 쉬웠을 때에는 생각해 보지 않은 일들이었다.



시골에 사는 건 내가 선택한 삶이었다. 도시에서의 편리함과 맞바꾼 불편함이었다. 내가 살던 패턴을 바꾸고, 미리 주문하거나 조금 더 기다리고, 없으면 없는 데로 있는 것 안에서 활용해서 사용하면 됐다. 의외로 내가 잘하는 것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져서 이제는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불편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나가는 길에 음식물 쓰레기가 쏟아지지 않게 잘 담아서 차에 태우고 나간다.





뜨거워서 데일만큼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 97년 산 귀뚜라미 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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