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과 스라밸
Work & Life Balance, Study & Life Balanc
10년 전쯤 아버지가 퇴직을 하셨다. 퇴직 후 아버지는 한동안 집 밖을 나서지 않으셨다.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힘없는 당신에 목소리는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오직 일에 파묻혀 사셨고 취미활동, 여가활동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내셨다.
연세 때문에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을 때 그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일 이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함은 얼마나 사람을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당신이 일에서 가졌던 자부심은 아마도 당신에 정체감이 되어 삶을 우직하게 견뎌낸 힘이 되었을 거다. 퇴직 후 상실감은 삶이 무너져 내린 듯 멍하고 혼란스러웠을 것 같다. 겪어보지 못한 나로선 상상하기 힘든 감정이다.
이런 아버지를 기억하면 워라밸이 떠오른다.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은 일과 개인의 삶 사이에 균형을 강조하는 말로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유래된 말이다.
만약 아버지가 삶에서 워라밸을 추구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이러한 상상은 아버지 세대에서는 배부른 소리다. 아버지 세대에 워라밸은 아마도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면 행복한 삶이지 무슨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개인적 삶을 추구하냐고 핀잔을 줄만한 용어이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우리 삶에 퍼진 배경도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Y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이다. 돈보다는 개인적 삶이 중요한 세대가 출현하면서 X세대는 자수성가형인 베이비부머 세대와 개인주의가 강한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 끼어 역할 혼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세대에 따라 워라밸은 다르게 이해된다.
그럼에도 2018년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를 필두로 워라밸 조직문화가 사회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고 워라밸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워라밸이 워라하 와 워라인으로 용어가 바뀌고 있지만 워라밸이 의미하는 일만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없고 개인적 삶이 중요하다는 점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화두로 던져졌다.
2015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근로시간과 노동생산성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분석한 결과 정상근로시간이 길수록 노동생산성은 높은 편이었으나 초과근로시간이 길수록 노동생산성은 높지 못하다는 결과를 보고하였다(이승렬, [근로자의 근로시간, 건강, 생산성의 상관성 연구], 2015, 한국노동연구원). 이처럼 무작정 일로 보내는 시간이 많다고 생산성이 높은 것이 아니라는 점은 다양한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Rest: Why You Get More When You Work Less]의 저자 알렉스 김 방은 휴식과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연구하여 개인적 삶이 일과 조화를 이뤘을 때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 속에서도 오히려 행복감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고 자살률과 심리적 불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에게 워라밸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워라밸을 추구하며 삶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과제가 성인에게만 중요한 것일까?
행복 연구에서는 행복은 습관이라 말한다. 워라밸도 습관이다. 학령기부터 공부(일)와 개인의 삶을 함께 추구하는 습관이 좋은 삶을 만든다. 워라밸이 일과 가정(개인의 삶)의 균형 잡힌 양립을 통해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듯이 학령기 자녀는 스라밸(Study & Life Balance)이 좋은 삶을 만드는 방법이다. 워라밸에서 파생된 공부와 삶의 균형이라는 신조어가 스라밸이다. 자녀에게는 일이 공부이니 어른들이 워라밸 추구가 중요한 것처럼 자녀도 스라밸이 중요하다. 그래야 어른이 되어서도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스라밸을 추구한다는 것은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태도와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버릇 즉, 삶에 습관을 배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에는 워라밸과 스라밸에 진정한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