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밝게 빛날 당신께

열네 번째 편지.

by 윰세

얼마 전, 제가 별을 보고 싶다고 말하니 저의 다정한 동반자가 곧장 천문대에 가자고 손을 이끌었습니다.

왕복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를 언제 다녀오냐고 툴툴거리는 저를 달래며 차에 태웠지요.

어쩌면 책상 앞에 앉아 주야장천 키보드를 두드려대며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제 모습이 딱하게 보였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도 내놓지 못하면서 괜한 사람에게 까칠하게 구는 제가 밉지도 않은 모양입니다.

깜깜하고 고불고불한 산길 운전을 마다하지 않는 마음이 넓은 제 동반자 덕분에 실컷 별을 구경하고 왔습니다.


천문대가 문을 닫은 늦은 시각임에도 별을 관측하러 온 사람들이 꽤 많더군요.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다 보니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속삭이는 목소리, 천문대를 향해 올라오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차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아주 커다랗게 들렸습니다.

어느 순간 ‘우와.’ 하는 커다란 감탄사를 내뱉으며 정적을 깨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어둠에 익숙해진 제 눈이 하늘을 촘촘히 수놓은 별들을 찾아냈고 원래 빛나고 있었을 별들을 제가 제일 먼저 발견이라도 한 듯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들었지요.


고요한 밤 속에서 제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맞이하니 넓디넓은 우주 속에 제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껴졌습니다.

티끌보다 작은 존재인데 뭘 그렇게 애쓰고 마음을 졸이며 살고 있는 걸까? 하는 한탄도 나오더군요.

그러던 중 수많은 별들을 보고 싶었던 이유를 깨달은 저는 미련 없이 천문대를 내려왔습니다.

굳이 눈으로 하늘의 별을 확인하지 않아도 내 안의 우주에도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고개만 들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별처럼 그런 환한 빛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제는 제 자신이 천문대에서 와서야 겨우 눈에 띌까 말까 하는 별처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건 크건 빛이 미미하던 밝던 모두가 빛나는 별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요.


천문대에 다녀온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며칠 동안이나 끙끙대며 썼던 글을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 뒤에 제가 한 일은 키보드의 삭제 키를 길게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검은 글씨로 빼곡하게 들어찼던 화면이 말끔해지니 속이 시원하더군요.

멋진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에 제 자신이 아닌 채로 글을 쓰고 있었던 겁니다.


나답게 살고 나답게 글을 쓴다는 건 어떤 걸까? 하는 고민과 함께,

당신께서 자신답게 살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하는 질문도 떠오르더군요.

당신께서는 여러 동생들을 거느린 맏딸로서, 두 아이를 가진 워킹맘으로서, 헌신적인 아내로서 살아오셨고 여전히 무거운 의무를 어깨에 지고 계시지요.


제 질문에 답을 해주듯 책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임상심리학자 메리 파이퍼의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입니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병든 가족의 간병을 비롯한 다양한 의무를 지고 살아가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이며,

나이 듦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본인과 지인의 경험담으로서 따뜻한 위로와 노년기에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만끽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지요.


작가가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의무가 없는 나날‘을 허락받을 때는 65세가 넘은 나이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고 노년기가 되어서야 갖가지 의무에서 벗어나게 된 거지요.

책의 원제는 <WOMEN ROWING NORTH: 북쪽으로 노를 젓는 여성>로 작가는 노년기로 향하는 삶의 여정을 노젓기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무가 없는 나날‘은 치열한 인생의 여정 속에 열심히 노를 젓는 시기를 지나 한숨을 돌리며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때이며 명상, 요가, 일기 쓰기 등 건강한 방법 통해서 자기 인식을 끌어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이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때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다 뒤져도 당신만큼 자신에게 사랑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람은 찾지 못할 것이다.‘라는 샤론 샐즈버그의 말을 인용하여 자기 내면의 통제 불능의 아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게 가장 위대한 지혜인지도 모른다고 말하지요.


어쩌면 저는 제 내면의 통제 불능의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안의 잔뜩 심통이 난 아이를 성급하게 달래려고 하니 글이 써지지 않는 게 당연했던 겁니다.

저는 내면의 아이를 살살 달래 배에 태우고 노를 젓는 삶의 여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아마도 평생 그래야만 하겠지요.


당신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제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노를 힘차게 젓고 있는 건 바로 당신이 평생을 쉬지 않고 노를 젓는 모습을 보고 배웠기 때문이며,

지금의 제가 있는 것도 모두 당신 덕분이라는 겁니다.

온 세상을 다 뒤져도 당신만큼 저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께 받은 사랑으로서 제 안의 아이도 힘껏 사랑해보려고 합니다.


당신, 사랑하는 우리 엄마.

모자란 편지와 의미 없는 말들로 당신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고 노력한 저를 부디 용서하십시오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단편적인 모습으로서 잘못 판단하여 바깥으로만 향하는 것 같은 당신의 사랑을 당신 안에도 비추길 바랐습니다.

제가 당신을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달라진 제 모습을 꾸준히 보여드리며 제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드리는게 효도겠지요.

별을 관측하고 온 뒤, 책 속에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부분을 찾게 되어 기쁜 마음을 담아 당신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하늘의 신호를 기다렸다.

밤하늘을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할머니가 내게 별똥별이라는 형태로 안부 인사를 보낼 것만 같았다.

나는 별이 된 가족들에든, 아니면 별 자체에게든 내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뒤이어 또 다른 생각이 찾아왔다.

그것은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몰랐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내가 찾아낸 답은 단순했다.

‘별은 그냥 별인 채로 놔두자. 그걸로 충분하니까.‘

바쁘고 성급한 내 마음은 그 짧은 순간에 이미 하늘을 향한 기대와 요구, 심지어 이야기까지 준비해두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밤하늘을 멋대로 조종하려 하는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은 그냥 별인 채로 두자.‘ 나는 온몸에 평화가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그 반짝있는 존재를 그냥 있는 대로 내버려 둘 수 있었다.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 ‘ 340쪽)]


책의 부제처럼 ‘우아하고 지혜롭게 세월의 강을 항해하는 당신’께 존경을 표하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