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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22. 2021

남편의 샌드위치

일요일 아침.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찍 일어난다. 예전에는 휴일에 늘어지게 자곤 했지만, 지금은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에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아침을 먹는 것도 평소와 같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아주 간소하게, 허기만 달랠 정도로 먹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침을 두 번 먹을 계획이므로.


8시 반에서 9시쯤, 어떤 날은 10시가 다 되어야 남편이 기지개를 켜는 기척이 난다. 그러고도 일어나려면 한참 있어야 하지만 나는 '이때다' 싶어 안방으로 들어가 남편 귀에 대고 속삭이기 시작한다.

"여보, 샌드위치 먹고 싶어."


남편은 못 들은 척하거나, 오늘은 딴 걸 먹자고 말해보지만 나는 참을성 있게 '샌드위치'라고 예닐곱 번쯤 말한다. 그러면 남편이 별 수 없다는 듯 반쯤은 마지못한 척, 반쯤은 은근한 의욕을 내며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결혼하고 나서 가장 신기했던 건 남편이 부엌일을 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청소고, 빨래고 다른 집안일은 잘했다. 손이 야무지고 꼼꼼해서, 뭐든지 대충대충 하는 나보다 훨씬 나았다. 그럼에도 요리는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간단한 라면 끓이기나 계란후라이조차 나한테 해달라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 의아했다.


나는 첫 명절에 시가에 가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라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던 것이다. 시아버지는 심지어 아장아장 걷는 네 살배기 아들아이가 나를 따라 부엌에 들어오는 것을 보시고도 아이에게 "아이고, 소망아! 남자가 왜 자꾸 부엌에 들어가니."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었다.


성평등을 따지기엔 솔직히 나보다 집안일을 더 잘하기 때문에, 딱히 요리 잘하는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긴 했으나 늘 뭔가 아쉬운 기분이 남아있었다. 친구들의 SNS에서 남편이 차려 준 밥상 사진을 본 날은 더욱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편이 내게 샌드위치를 만들어주었다. 아마도 내가 아파서 누워 있었거나, 일이 밀려서 집에서 열근모드였거나, 아니면 그저 내가 만든 음식이 남편 입에 안 맞아서였을 수도 있다.


나는 감격했다. 남편이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다니!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계란을 깨서 휘젓고, 치즈의 비닐포장을 까고 있는 남편이 신선했다.


남편이 해 준 샌드위치는 치즈 사이에 스크램블드 에그를 끼운 단순한 것이었고, 케첩을 듬뿍 뿌린 것이 담백한 내 입맛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저 맛있었다. 그 날따라 남편의 뒷모습이 듬직해 보였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주말에 샌드위치를 얻어먹기 위해, 아침 두 번 먹는 것도 불사한 채 남편의 귓가에 대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나를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에 선 등짝을 보기 위해서, 투덜거리면서도 가지런히 만들어 은근히 내가 좋아하는 접시에 플레이팅까지 해서 주는 배려가 기뻐서.


이번 주에도 성공! 식재료 절약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계란도 두 개, 치즈도 두 개, 뭐든지 호방하게 넣은 남편표 샌드위치를 한 입 물며 나는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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