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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도 Mar 05. 2021

모호함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Hindu Descanso Natural 힌두 데스칸소 내추럴 파라 노체

숙면에 도움이 되는 차라면 홀랑 사버리는 편이다. 종종 불면으로 고생하기 때문이다. 심신이 피곤해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날엔 여행길에서 만난 지나치게 덜컹거리던 밤 버스조차 그립다. 그때처럼 맘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직각에서 더는 꺾일 의향이 없어 보이던 미친 버스 의자 위에서도 감사한 마음으로 숙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지만 각자가 살아가는 계절은 제 위도에 따라 달라서, 의도치 않게 부딪히는 순간들이 있다. 사소한 것들은 그냥 흘려 보낼 수 있다지만 깊은 관계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주 소중한 사람인 만큼 그와의 작은 온도차에도 마음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려버린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편한 시간들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앞으로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이 한밤의 적막과 뒤섞여 천천히 나를 수렁으로 이끈다. 어떻게든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고 뒤척이면 먼 우주에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든다. 머릿속으론 오늘의 장면을 반복한다. 이 상황의 정체를 빨리 확실한 언어들로 정리하고 싶어서다. 그렇게 아직 명확하지 않은 감정 덩어리를 닦달하다 보면 '감정은 어떻게 푸는 것이 좋은가?'라는 주관식 문제를 모두에게 통용되는 답이라도 존재하는 것마냥 바라보는 나를 마주한다.


고개를 돌려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순식간에 정리하고 풀어내는 것만 같다. 제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리고 정리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나는 진심으로 부럽다. 습관처럼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라던가 심리학 채널이라던가 정신의학과 선생님들의 강의를 틀어놓지만,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이 풀어지는 속도는 왜 이리 느린 건지 스스로가 답답해 견딜 수가 없다.


내가 나를 석연찮게 바라보는 눈빛에 정작 풀어야 하는 감정은 더 안으로 숨어버린다. 번뜩 좌뇌에서 '너 당장 마음 풀지 않으면 너만 손해야' 하며 하루 종일 닥달하지만, 그러실수록 마음은 더 굳게 문을 걸어 잠가버리고요. 아, 이 무슨 갓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서툰 부모의 시행착오 같은지.


테리 같은 좌뇌님
도움!

이렇게 불면은 장기화된다.







그러다 어저께 불현듯 이 차가 떠올랐다. 코로나 이전 지구 반대편을 유랑하던 시절에 티백에 그려진 인자한 수행자에 반하여 구매했던 차다. 처음 먹었을 땐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었다. 이건 민트도 로즈마리도 아니고 레몬 그라스도 아니고... 특징적인 향 하나가 부각된 단일차에 익숙했던 내게 이건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 같아 큰 혼란을 안겨준 차였다. 나중에 다양한 차들을 더 접하게 되면서, 여러 향이 한꺼번에 나는 차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 조금씩 괜찮아졌지만 말이다.


언젠가부터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이 차를 받아들이는 과정과 비슷하다 느낀다. 물론 인간이 몇 곱절은 더 복잡하지만. 오랫동안 마셔왔어도 우릴 때마다 새로운 맛이 발견되는 이 차처럼,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했던 친밀한 관계에서 몰랐던 면들이 나타날 때가 있다. 낯선 상대를 볼 때마다 원치 않게 불안이 자극되는데, 그럴 때면 흐르고 변하는게 생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나도 상대방도 매일 확장하고 수축하는 제 세상의 모호함 속에서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렇다고 해서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내 취향이 쉽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낯선 무언가가 불쑥 들어섰을 때, 이를 불안으로 인지하기보단 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되새겨본다.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내가 견딜 수 있는 범위도 알 수 있게 되겠지. 또한 관계 속 커뮤니케이션에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예의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첫번째로 알아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이었다. 내 속에서 발생한 나의 감정을 알아주고 믿어주는 것이 다른 세상을 받아들일 중심점이니까! 단단한 중심점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믿어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늘 내편이라고 내게 말해주어야겠다.






지금껏 세상 그 무엇에도 변치 않을 것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무너졌다. 모든 것이 너무 버겁게만 느껴졌던 어느 날 나는 펑펑 울며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 때 한 상담 선생님께 들은 조언으로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삶의 모호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인생은 모호함 속에서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정도의 자기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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