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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Aug 01. 2024

오렌지와 빵칼

오렌지를 빵칼로 자를 수 있을까

빵칼을 가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스포 주의)



내 안의 이중성은 나만 아는 비밀. 그 이중성은 나를 포장하기도 하고 발가벗기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빵칼'로 그런 나를 우아하게 커팅해 보기도, 혹은 이리저리 푹푹 쑤시며 내 안을 헤집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나도 만족스러운 나는 아니다.


유 네일드 잇! (29쪽)

무엇을?


소설의 마지막 장을 닫았을 때 '허허,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었다. 과감히, 내밀히,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절제와 구속을 던진다. 그리고 통제와 해방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오렌지는 달지만 끝까지 달지만은 않다. 빵칼은 칼이면서 종국엔 '겨우' 빵을 자르는 빵칼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도덕'이 막지 않는다면 빵칼은 우리의 선의를 찌르고, 타인의 무언가를 찌르고, 세상의 모든 통제된 힘들을 잘라낼 수도 있다.


유 네일드 잇. 해냈구나.


주인공은 알게 모르게 '배려왕'이라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본의는 아니나 자신의 본의를 선의로 숨기며 살아가는 것. 그런데 우리 안에서 '해방'의 '악'으로 규정된 무언가를 꺼내고 그것을 전두엽이 시키는 대로 그저 내지른다면? 그것은 혼란일까, 자유일까.



유치원 교사인 '나', 정의나 인류애를 강조하다 못해 강요하는 친구에게 자발적으로(?) 휘둘리는 '나', 원초적 할 말을 늘 삼키고 사는 '나', 사실은 벗어날 경로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를 '나.'


작가의 말에 의하면 소설 밖의 독자였던 나는 '해방감' 쪽에 무게를 두는 도덕적 인간이다. 해방되고 싶은 일개의 구속된 인간, 착한 아이 콤플렉스 보유자. 그러다 이 억압에서 빵칼을 꺼내 들지도 모르는 인간. 하지만 결국 '나의 자유를 부수어 버리고 말' 통제의 인간.


무엇이 옳은가. 아니 이것은 옳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 혹은 본성의 문제.

'선(line)'이 없는 자유를, 우리는 어디까지 누릴 수 있을까.

딱 오렌지를 자를 수 있는 빵칼 정도의 자유일까?



1일 1소설 핫썸머* 프로젝트!

하루 한 권의 소설을 느긋이 읽고 하루 한 번 조급히 리뷰를 올립니다. 소설 한 잔으로 이 쨍쨍한 여름을 뜨겁게 마셔 버립시다, 렛츠기릿 +_+(핫썸머*: 외래어 표기법 대신 일상 언어 표기를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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