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오랜만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시고 나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다. 주말,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한 잔씩 한 잔씩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가족과 함께하는 늦은 밤, 이야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나는 아버지의 고향으로 떠났다가, 어머니의 고향으로도 떠나 본다. 그러다 나는 젊은 날의 아버지가 되었다가, 어린 날의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온 지도가 어느새 내게도 한 조각의 지도가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렇게 과거로 과거로 올라가시다가, 어느새 갑자기 다시 미래로 미래로 시간을 옮겨 오신다. 그러다 보면 결국 부모님들은 당신들이 없을 미래로까지 시간을 옮겨 버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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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너희끼리 모여서 엄마, 아빠에 대해서 뭐라고 할까?
부모님이 상상하는 미래는 이런 것이다. 아버지가, 또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고 난 후, 자식들끼리 모여 앉아 우리 아버지는 이랬어, 우리 어머니는 저랬어,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분명 있을 것이라 하신다. 그때 우리의 입에서, 우리의 눈에서, 우리의 가슴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아버지는 아버지 없는 미래를 우리에게 물으신다. 왜 하필 즐겁게 술 한잔 하는 지금 이 불금의 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시나요? 하지만 아버지는 나의 답을 채근하신다. 우리 딸들에게는 상상도 해 보지 않은 미래, 그 미래를 벌써 막연히 그려 보시는 아버지에게 나도 되묻고만 싶다.
그럼 저는 아버지께 어떤 딸이었나요?
말을 해 무엇하랴? 아버지 등에 빨대를 꽂고, 아버지 두 발목을 끝까지 부여잡고 아직도 아버지 그늘 아래 들러붙어 있는 나. 오히려 용서받아야 하는 세월은 나에게 있다. 어떤 딸이었는지 사실 내가 더 잘 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랑을 입고도 나는 때로 볼멘소리를 해대며 부모님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어렸을 땐, 분에 넘치는 사랑에 갑갑해하며 방문을 걸어 잠그기도 했다. 그리고 다 자란 ‘어른아이’ 같았던 이십 대 시절에는 본격적으로 백수계로 뛰어들었다. 게다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용돈 한 번 드려 본 적도 없었다. 설상가상 남들은 한 번이면 족했을 수험생 부모 역할을 나이 서른이 될 때까지 수없이 덮어씌웠다. 매 년 12월이면 ‘인생 승리’가 걸린 시험을 치르며 부모님을 덩달아 긴장시켰고, 매 년 1월, 2월이면 ‘인생 실패’나 '인생 불합격'이라는 상콤함을 맛보게 해 드렸다. 이제는 시집 안 간 딸,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딸이 되어 아직까지도 부모의 등에 엉겨 붙어 있다. 거참. 불효의 끝이 보이지가 않는다.
"너희 어머니, 아버지 때는 정말 많은 사람이 모일 거야."
친척 오빠가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이런 말을 나에게 한 적이 있다. 어머니는 가족들이 궂은일을 겪을 때 특히 더 사람들을 잘 챙겨 주시는 편이다. 우리 어머니가 고마워서 하는 말이라지만 듣고 싶은 말은 결코 아니다. ‘어머니, 아버지의 때’라니, ‘그때’라는 시기는 한참을 미뤄 두고 싶은 ‘때’란 말이다. 그리고 또 다른 친척 언니는 나와 동생에게,
"너희들이 우리 아버지 마지막 가는 길에 이렇게 팔 걷어붙이고 열심히 도와주니 고맙다. 우리 애도 나중에 너희 아버지, 이렇게 도와주라고 할게."
아니 다들,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나는 자식끼리 장례 품앗이를 하자는 건가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듣기 싫었다. 인생의 마지막 회를 꼭 보러 와 주겠다는 친척들의 약속이 그땐 정말 듣기 싫었다. 내 아버지, 내 어머니. 그분들은 영원히 내 곁에 남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다. 나는 늘 철없이 이렇게만 믿는다. 아버지, 어머니, 항상 내 곁에 머물러 주세요.
이제 빈손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김 형,
이제 그만 그 너덜너덜한 등짐 좀 내려놓으시죠.
땟국이 줄줄 흐릅니다. 무겁고, 눅눅하고, 칙칙한, 머지않아 부패될,
그 등짐을 언제까지 지고 다닐 작정이십니까.
당신의 흠은,
당신 몸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남은 등짐도 마저 내려놓으시죠.
당신이 등에 지고 있는 등짐 속의 그 많은 것들은,
죄다 남의 것들입니다.
이제, 빈손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2010. 1. 9.
아버지는 저 글을 쓰실 때, 이미 마음속으로 막연히 그때를 준비하셨나 보다. ‘등짐을 내려놓아야 할 때’, ‘빈손으로 가야 할 때’, ‘땟국이 줄줄 흐르는, 그 세상의 때를 벗어나야 할 때’, ‘남은 등짐을 이제 세상에 맡겨야 할 때.’ 아버지의 그때가 기어이 오고 만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찾지 못하고 말문이 막혀 버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서는 처음엔 차가운 눈물이, 그러다 차츰 뜨거운 눈물이 차오를 것이다.
우리의 가슴에서는 '참 좋은 분이셨어'라는 이야기가 켜켜이 쌓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입과 눈, 가슴은 한동안, 아주 오랫동안 그분들에 대한 추억으로 시리게 문드러질 것이다. 지금, 나는 당연하게도 그 가슴 문드러질 이야기들이 무한정 미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 자매가 부모님을 회상으로만 만나야 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내 안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를 불러낼 것이다. 같이 손을 잡고, 이번엔 팔짱을 풀지 않고, 늘 걷던 학의천 산책길을 언제까지고 함께 걸을 것이다. 그렇게 항상 내 눈, 내 입, 내 가슴에서 그분들은 살아계시리라.
언제까지고 내 곁에 살아계실 것을 알기에 오늘도 나는 내 옆에서 내 삶과 동행하시는 부모님을 소중히 바라본다. 세상에서 제일 감사한 일을 딱 한 가지만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분들 밑에서 내가 나고 자랐다. 그 변하지 않는 사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딸자식이어서 죄송하지만 계속해서 손이 많이 가는 이 딸내미를 쭉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부모님들은 자신의 시간 뒤에 남겨질 자식의 시간을 생각한다. 특히 우리 집은 시집을 안 가거나 못 간 딸내미가 하나 있다. 그 딸내미는 지금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쓴다.
나는 매일 마지막 회처럼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의 부모님도 매일 마지막 회인 것처럼 생을 살아가신다.
"이것 좀 봐라."
‘마지막’이라는 글자를 생각하며 한창 감상에 빠져 저 혼자 멜랑콜리한 기분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오늘도 쓱, 아버지가 내 손안에 종이 한 장을 슬쩍 떨어트리신다. 아버지 글이, 아버지 삶이 또 나에게 도착한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또다시 시작하신다.
"이것 좀 네가 보고 교정 좀 해 봐라."
"올~ 아부지. 오늘은 아부지 글이 꽤 좋은데요?"
"그러냐? 괜찮냐?"
"네엡~!"
아버지가 만족스러운 듯 웃으신다. 우리 부녀의 드라마는 글 속에서, 우리의 이야기 속에서 그다음 이야기를 준비한다. 드라마도 때로는 연장전을 시작한다.
마지막 회는 언제까지고 to be continued이다. 우리 부녀의 일상도 언제까지고 ‘다음 이 시간에……’로 이어진다. 우리의 지도는 이렇게 일상 안에서 가득가득 길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