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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Oct 29. 2019

신명 나는 신음 소리

음응으으읏아아앗아아앟하하하하허허허허

11월, 12월이 지나면 13월, 14월이 올 것만 같은데 나는 새로운 나이를 먹어야만 한다. 상상도 못 한 숫자가 내게 밀려온다. 살아가느라 깜빡 잊고 있었다. 낯선 숫자가 어느새 내 앞에 다가와 앉아 있다. 좀처럼 나를 비껴갈 생각을 않는다. 어느새 쌓인 인생 숫자가 내 목을 조인다. ‘해 놓은 것이 없는데…….’ 나는 늘 ‘아등바등’ 옆에서만 붙어 산 듯하다. 그리고 그 해 온 것들은 제대로 이름조차 달고 있지 아니하다. 나는 계속해서 안절부절하고 나이만 먹는다.           



신음하는 세월이 있습니다  

   

여보시오, 거기 누구 없소.

날, 좀 어느 으슥한 산골짜기로 끌고 가

서대(西大)처럼 납작하게 두들겨 패 줄 사람 없소.

작심하고 던진, 일곱 살 아이의 돌팔매에 맞아, 두 다리를 쭉 뻗고, 눈이 튀어나와 숨이 끊어진 무논의 개구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채우고 또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옹기항아리 하나 가슴에 묻혀 있습니다. 그 항아리가 산산조각 나도록, 온몸에 피멍울이 퍼렇게 들도록, 두들겨 패 주면 됩니다.

매질 품삯은 외상입니다.     

나도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렇게 서대처럼 납작하게 두들겨 맞아야, 나는 숨을 쉴 수 있습니다. 눈이 튀어나도록 두들겨 맞아야, 신음소리를 멈출 수 있습니다. 가슴속 통증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신음하는 세월이 있습니다.     


2011. 2. 25.          





아무것도 이뤄 놓은 업적이 없어 결코 위인전이 될 수 없는 내 삶을 돌아본다. 그런데 마흔이 되고서야 일흔을 넘기도록 스스로 납작 엎드리셨던 아버지가 눈에 뜨인다. 아버지는 당신의 시에서 살아온 세월을 후회하는 대신 누군가가 자신의 세월을 납작하게 두들겨 패 줄 것을 요구하신다. 더는 자신의 생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듯이, 더는 자신의 과거를 좌시하지만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제대로 두들겨 맞아야만 후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듯이.


자, 어서 와서 나를 패 주시오.


무엇이 그리 답답하였는지, 무엇이 아버지 생에 꽉 틀어 막혀 있었던 건지, 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 아무한테라도 자기 몽둥이를 던지며 자신을 흠씬 두들겨 패 달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다들 자신의 인생을 사느라 우리 아버지의 호소를 힐끔 쳐다보고는 무심히 그냥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패 줄 사람을 기다리다 아버지가 점점 지친다. 몽둥이를 쥔 손에서 힘이 빠지고 아버지는 급기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매질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때 갑자기 아버지 손에서 몽둥이를 뺏어 들고 아주 쌩쌩한 남정네 둘이서 아버지 앞에 우뚝 선다. 점점 생의 기운이 가득 차오르고 있는, 건장한 기운의 두 사내가 아버지를 쳐다본다.      



 하부지? 하부지?     



그들이 내 아버지를 ‘하부지’라 부른다. 우리 아버지, 손주 녀석들이 부르니 나이 든 몸을 안 움직이려야 안 움직일 수가 없다. 오이야, 무신 일이야? 할아버지가 손주에게로 간다. 워낙 엉덩이가 무거우신 분이지만 손주가 부르면 그래도 제때 응답하려고 하신다. 손자들은 소파 앞에서 갑자기 벌러덩 엎드리며, ‘하부지, 하부지!’를 외친다. 할아버지 보고 자기들처럼 같은 동작을 취하라는 뜻이다. 그러고는 자기의 고사리 같은 손끝으로 저기 저 소파 밑 구석 한쪽을 가리킨다. 땅바닥과 소파의 다리 사이에 허공이 있다. 그 어두운 공간으로 자동차 하나가 굴러갔다고 어서어서 꺼내 달란다. 때로는 일부러 소파 뒤로 물건들을 떨어트린다. (손주들은 하부지의 인내를 즐겁게 시험한다.)


 할아버지가 긴 효자손을 들고 소파 밑을 향해 엎드리자, 이때다 싶은 두 녀석이 할아버지 등 위로 겹겹이 달려든다. 더는 젊지 않은 체구 위로 세상 제일 젊은 두 녀석의 체구가 하나씩 하나씩 겹쳐진다. 합이 5.5년어치의 무게가 ‘하부지’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꾹꾹 누르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말을 타듯, 배를 타듯, 말을 몰아가듯, 노를 저어가듯, 이제 겨우 세 살배기였던 녀석들이 제 할아버지를 장난감 삼아 마구 흔들어 댄다.


아이고, 이놈들아. 하부지 힘들어.



할아버지가 앓는 소리 와중도 자동차 꺼내기에 성공하자 손주들은 더욱더 소리 높여 ‘할아버지’라는 말을 탄다. 힘들어, 이놈들아. 할아버지의 소리가 아이들의 함성에 묻힌다. 할아버지는 웃는 얼굴로 자그마한 신음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흥겨워 손주 녀석들이 더 신나게 하부지 등을 누빈다.      


자, 준비되셨으면 엎드려뻗쳐, 하시죠? 예?     


한 녀석은 엉덩이를 쿵쿵 찧고 다른 한 녀석은 효자손을 몽둥이를 삼아 내 아버지를 꽉 붙든다. 녀석들은 아랑곳 않고 하부지 등 위에서 세상 제일 흥겨운 춤을 추며 리듬에 맞춰 온몸을 흔들어 댄다. 할아버지의 신음소리가 점점 농도 짙은 웃음소리로 변해 간다. 신음이 웃음으로 변하는 데는 채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칠십이라는 텃밭을 일구다 보니 손주들 덕에 ‘신음하는 세월’ 중에 난데없이 이렇게 ‘웃음꽃이 피는 날’도 다가온다. 끙끙 앓던 소리가 웃음소리로 뒤바뀌며, 아버지의 납작한 세월 속에서 신음 소리가 자꾸만 꽃으로, 꽃으로만 피어난다.     


음응으으읏아아앗아아앟하하하하허허허허      

 


내 아버지의 시간이 이렇게 웃음과 신음이 뒤섞인 채 신명 나게 흘러간다. 아버지가 긋고 간 인생의 밑줄들, 아버지가 밟아 온 인생의 자국들. 그 밑줄 사이사이, 그 눌린 자국들 틈틈이, 아버지의 텃밭에는 생명들이 움튼다. 발자국이 흐릿한 양반이라며 스스로를 폄훼하셨지만 이 건장한 생명체들이 하부지의 등을 타고 생의 곡예를 함께 이어 간다.


문득 아버지가 밟아 온 생의 곡예들을 떠올린다. 서른과 마흔의 밑줄 사이에는 나와 동생이라는 씨앗이 아버지의 텃밭에서 마음 편히 세상에 싹을 틔운다. 쉰과 예순의 밑줄 사이에는 제법 좋은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 온몸으로 세상의 바람을 맞아야 했던 ‘아버지’라는 나무가 뿌리를 휘청거리며 서 있다. 그리고 지금 일흔과 여든 사이, 아버지의 텃밭에는 전에 없이 새로운 꽃들이 피어난다. 서른몇 해 전 틔운 싹이 꽃이 되고 열매를 맺어, 그 꽃이 ‘쌍둥이 손주 녀석’이라는 열매를 내린다. 아버지는 자신의 인생 밑줄, 그 틈바구니에서, 이렇게 아주 굵은 밑줄 자국들을 남긴다. 그 자국들이 남긴 여러 무늬들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다가 딸내미 둘을 만들고 나아가 손주 녀석, 그것도 쌍둥이 손주 녀석 두 묘목을 조심히, 정중히 만들어 낸다.      



 “하부지, 하부지!”

 손주들이 다시 제 할아버지를 부른다. 다시금 납작 엎드려 손주들 재롱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나의 아버지를 본다. 지금 저 손자들을 위해 바싹 엎드려 채  그들을 목말 태우고 그들의 부름에 소리 낮춰 응답하고 있는 아버지의 저 낮은 자세를 본다. 아버지는 엎드려 숨은 것이 아니라, 더 깊은 바닥으로 가서 자신의 소음을 낮추고 주변의 볼륨을 높인다. ‘아버지’라는 터전이 일군 ‘나’라는 씨앗은 그제야 다시 아버지의 낮은 자세를 제대로 들여다본다.


나는 불현듯 아주 편안했고 아주 다정한 흙냄새가 나는 이 텃밭 한가운데서 내가 아주 오랫동안 편히 서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아주 오래고 이 텃밭에서 저기 저 ‘부모’라는 두 나무를, 새로 태어난 ‘조카’라는 새싹들을, 무럭무럭 어른 역할을 해내는 ‘동생’과 ‘제부’라는 새내기 나무들을 본다.

 

나는 내 품으로 이 텃밭을 마음껏 껴안고 싶다. 이 칠십이라는 텃밭을 언제까지고 아버지와 함께 가꾸어 나가고 싶다. 이제 나는 엎드려 있던 아버지를 일으킨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정히 이 터전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 텃밭에 되도록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당분간 이 터전에 좀 더 흠뻑 취해야겠다.    
아버지의 걸음에 맞추어 딸이라는 자가 천천히 걷는다.
걸을수록 아버지가, 그리고 이 텃밭의 온기가 가슴 가득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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