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 떠날 수 있는 용기에 박수를
“J, 1월에 캐나다 가요”
이제 막 친해진 첫째 아이 친구 엄마가 말했다. 그동안 고민만 하다 이제야 결심이 서서 급하게 준비 중이라고 했다. 캐나다 몬트리올. 아이스하키를 하는 J에게 딱 좋은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J 아빠는 회사 최초로 1년 육아휴직을 쓰는 용기를 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누나와 1학년 J에겐 더 늦출 수 없는 시기다. 코로나로 영 결정을 못하다가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다고 생각하자 마음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1년은 남편이 육아휴직을 해서 함께 지내다 남편이 귀국하면 엄마가 2년 더 어학연수를 하는 식으로 길게는 3년을 보고 나갈 계획이다.
J네는 아이 둘 학원비만 한 달에 200만 원이 넘게 든다고 했다. 첫째는 바이올린과 미술을 하고 둘째는 아이스하키를 한다. 두 아이 영어는 기본. 그 돈이면 캐나다에서 어떻게 생활비는 되겠지. 거기에 지금 집을 월세로 내놓아 캐나다 집 렌트비를 내면 얼추 그림이 그려진다. 남편의 1년 월급을 포기하면 된다. 그럼 어떻게든 캐나다에 갈 수 있다는 얘기다.
2~3년이면 아이들 영어는 걱정 없겠다. 캐나라라면 벌써 미술로 진로를 정한 첫째 아이와 아이스하키를 하는 둘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이 될 테다. 무엇보다 여태 앞만보고 달려온 아이 아빠와 자신에게도 선물같은 시간이 될 것 같다고. 마침 주변에서 캐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들어온 지인이 두 집 있는데 다들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다며 무조건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 주었다고 했다.
‘캐나다 어학연수’라는 얘기를 듣자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날 밤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우리도 캐나다 이민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6~7년 전 이민박람회도 다녀왔다. 그때만해도 캐나다 이민이 많이 막혀 있던 때라 일단 퀘벡으로 들어가서 허드렛일을 하며 기간을 채운 뒤 다른 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한국에서의 직업과 전공은 아마 살릴 수 없을 거라고. 남편은 나갈 수만 있다면 버스운전을 해도 좋다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렇게 가슴에 묻어두었던 해외살이였다.
내가 대학교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그때 내 남자친구(현 남편)는 극구 반대를 했었다. 어차피 가서 영어학원 다니는 건데, 그거라면 여기서도 할 수 있지 않느냐. 자기는 다녀와 놓고 나보고는 나가봐야 별거 없단다. 결정적으로 아빠가 보내주기 힘들다고 해서 포기했지만, 파릇한 청춘에 외국생활을 못해본 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를 말리던 그때 남편의 설득이 무색하게 남편의 어학연수는 꽤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캐나다 벤쿠버는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모든 게 좋았다고 했다. (내 어학연수는 왜 말린거야!)
그때 내가 어학연수를 갔다면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했을까?
내 인생이 지금과 많이 달려졌을까?
적어도 영어는 지금보다 낫겠지.
그때 못 간 어학연수를 가는 거다. 아이들이야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니는 거고, 그 핑계로 나도 영어 공부 좀 해보자! 추위는 딱 싫지만, 캐나다에서라면 견딜만 할 것 같다. 아침마다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하지만 그것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가족과 온전히 함께하는 그 시간이 모두의 인생에게 꽤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래! 어학연수 나도 가보자! 지금 당장은 어렵겠고,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정도면 좋겠다(내 맘대로 시기도 정했다.) 그때 온 가족이 떠나는 거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나는 무척 설레기 시작했다. 마치 여행을 가기 위해 비행기표를 끊어둔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