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수정 Oct 11. 2022

수영복의 세계

수영 3 / 수영보다 수영복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수영복=아레나' 이게 공식인 줄 알았다. 다시 수영 강습을 시작하며 남편에게 수영복 조언을 구하자 아묻따 아레나. 수영복은 아레나 선수용, 수경은 아레나 코브라를 사면 된단다. 아레나가 일본 제품이라 고민을 좀 많이 하다 국내 제품인 배럴을 샀는데 새 수영복이 허벅지부터 안 들어가자 아주 맘이 상해버렸다. 그래서 반품하고 아레나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국내 아레나는 (주)동인스포츠가 라이선스를 인수해서 생산하고 있다. 물론 아레나 코리아의 지분 일부는 일본 데상트가 보유하고 있다.

검은색 수영복에 검은색 코브라 수경 검은색 수모를 쓰고 강습에 들어갔다. 고급반 다른 회원님들의 페이스를 따라가기도 힘든 상태라 초기엔 다른 회원들의 착장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좀 정신이 들고 보니 이 분들! 수영복이 왜 이렇게 다 예뻐? 뭐야 다 아레나 입는 거 아니었어? 검은 수영복을 입은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녀들의 수영복을 힐끔힐끔 살펴 브랜드를 파악하고자 했으나 당최 알 수가 없다. 검색을 해보자! 녹색창에 '예쁜 수영복'을 검색해 파도를 넘고 넘으니 나는 이미 한 카페에 가입을 하고 있었다. 카페명은 '수영복 코디 카페(SHC)'. 수영복을 코디해 입는다고? 진짜 처음 듣는 얘기였다.

10여 년 전 수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장 큰 수영 카페는 수미사(수영인들의 놀이터)였다. 그런데 후발주자 카페로 수미사를 능가하는 카페가 생겼으니 그게 SHC다. 수미사는 2009년에 만들어져서 누적 멤버 수가 더 많지만, SHC는 2016년 생겼음에도 더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전체 게시글은 이미 수미사를 넘어버렸다. 새 글 수도 수미사의 6배에 달한다.

이 카페는 그날 입은 수영복, 수모, 수경을 공유하는 곳이다. 다시 말해 수영복 OOTD. 검정 수영복 하나만 입었던 나는 몰랐는데, 매일 기분에 따라 수영복을 골라 입고 수영복에 맞게 수모와 수경을 코디해 입는 세계가 여기 있었다. (아, 그래서 우리 수영장 회원님들 수영복이 그렇게 매일 달라졌구나!)

그곳은 한마디로 개미지옥이었다. 알게 된 이상 빠져나갈 수 없다. 카페를 구경하다 일주일 동안 내 방문 횟수가 100을 넘겨버렸다. (하루 10번 넘게 들락날락) 더 이상 ‘수영복=아레나’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았다.  



이곳을 오며 가며 알게 된 몇 가지 사실.

1. 예쁜 수영복 브랜드에는 졸린, 펑키타, 나이키 등이 있으며 국내 브랜드로는 르망고, 센티, 뮬리카, 풀타임, 움파 등도 디자인이 좋다. 혹자는 이들을 줄여 ‘펑나졸’이라고도 했다. 각 브랜드마다 특징이 있는데 펑키타는 화려한 프린트에 개성이 강하고, 졸린은 색감이 좋고 세련된 느낌, 나이키는 나이키(이거 뭔 말인지 알죠?)다.

2. 수모는 졸린 선호도가 높다. 졸린은 이번에 첨 알게 됐는데 호주 브랜드다. 과감한 디자인과 다채로운 색감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특히 졸린 수모를 그렇게 많이 찾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구하기가 어렵단다. 워낙 인기가 많아 공식 홈에서 판매할 때도 금방 품절이 되는 모양이다. 인기 있는 수모를 구하기 위해 웃돈을 주겠다는 사람도 많았다.



3. 수경은 끈까지 리폼한다. 리폼할 수 있는 끈을 따로 팔기도 하고, 손재수 좋은 사람들은 끈을 제작해 팔기도 했다. 수경의 미러 색과 끈까지 그날 입는 수영복의 색에 맞추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사람들이 참 귀엽다. 수모 끈까지 리폼할 생각을 하다니! 이 사람들은 수영에 진심이다. 다 큰 사람들이 누구의 강요도 없이 좋아하는 운동을 선택해서 열심히 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는 모습. 뭔가를 열심히 좋아하며 산다는 건 꽤 행복한 일이다. 수영복 OOTD의 세계엔 그런 사람들이 가득했다. 이런 세계가 있었다.

자, 여기까지 알고 나니 우리 수영장 회원님들이 왜 그렇게 예뻐 보였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건 뭐 수영복 패션쇼가 다름없다. 매일 달라지는 회원님의 수영복을 보며 도대체 수영복이 몇 개냐고 묻고 싶어졌다. (실제로 물어보니 옆에 있는 다른 회원이 ‘이 언니 수영복 100벌쯤’이라고 답했다. 근데 입을 게 없대요. 다들 이해하시죠? 맨날 옷을 사도 입을 게 없는 그 마음)

그리하여 나도 수영복 몇 벌을 들였다. 맨날 검은색 아레나만 입다 새 수영복을 들이고 나니 더욱 수영에 가고 싶어지는 거다. 그래서 지난 2주간 주 5회 수영을 갔다.

여기서 잠깐, 제 수영복 자랑을 해볼까요? 수영복을 알아갈 즈음 르망고라는 브랜드가 판교 현대에 팝업을 열었다길래 한달음에 달려가 수영복 2개와 수모를 사 왔다. (거기서 우리 수영장 회원님들 만난 건 안 비밀.) 그 뒤에 수모도 사고, 수영복을 사고, 수경을 사고, 수영복을 또 사고…

그런 얘기가 있다. 넥타이를 샀는데 입을 옷이 없어 옷을 사고, 옷에 맞는 구두가 없어서 구두를 사고, 거기에 어울리는 가방을 사게 됐다는 이야기.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상황이다.


수영복이 하나일 땐 몰랐는데 수영복 3벌을 들이니 진짜 입을 수영복이 더욱 없다. 그러면서 또 수영복을 검색하는 나란 사람. 확실한 건 예쁜 수영복 입으면 수영하는 기분이 좋다는 거다. 그거면 됐다.

이전 15화 문제는 접영이 아니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